인간, 그것이 알고 싶다
SF, 즉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은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을 바탕으로 한 문학 장르입니다. 가상 또는 미래 시점에서 우주 탐험, 시간여행, 평행세계 등의 개념을 토대로 상상력을 펼친 수많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미래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는 과학 기술에 대한 기대 심리나 공포도 있겠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현재의 세계를 풍자하고 냉철하게 돌아보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상상력을 동원한 은유로서 말이죠.
창작뮤지컬 <인간탐구생활>은 500년 후, 가상의 유토피아 행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슈퍼컴의 컨트롤 아래 유토피안들의 생활은 완벽했습니다. 세포 증식과 복제를 통해 영생을 얻고, 감정 조절 캡슐을 먹으며 거리 유지 장치를 통해 타인과의 접촉 없이 평화롭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 슈퍼컴 제로가 갑작스럽게 유토피아의 끝을 예고하고 ‘지구’라는 말만 남긴 채 꺼져버립니다. 곧 45일간의 멸망 시계가 작동하게 되지요. 유일한 해결책이 지구에 있으리라 생각한 유토피안들은 서둘러 지구로 향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것은 끔찍하게 파괴된 지구입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던 그곳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해결‘책’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유토피안들은 이 대본으로 연극을 만들고 공연이라는 실험을 해보기로 합니다. 어설픈 연습이 시작되고 이들은 각자 다양하고 새로운 감정들을 폭풍 같이 느끼게 되는데…
이들의 좌충우돌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은 과연 무사히 올라갈 수 있을까요? 또한 유토피아의 멸망시계를 멈출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 작품은 유토피안이라는 새로운 존재를 등장시켜 감정에 메마른 현대인들의 모습을 위트 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후 위기로 부상된 지구 멸망설이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소통의 단절과 고립 등,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여러 문제 속에서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셰익스피어 고전의 명장면과 명대사로 참신한 답을 내어놓는 블랙 코미디 소동 극입니다. 캐릭터들의 관계 변화를 통해 사랑의 힘, ‘우리’라는 진정한 연대의식을 담아냈습니다.
<인간탐구생활>은 한소영 프로듀서, 남현정 작가, 유수진·천필재 작곡가, 장우성 연출, 박유정 안무, 이지현 음악감독 등 실력파 크리에이티브팀이 의기투합한 창작뮤지컬입니다. 2024년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주최한 ‘K-뮤지컬국제마켓 선보임 쇼케이스’와 ‘지역 맞춤형 중소 규모 콘텐츠 유통 사업’에 선정되며 가능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
이 작품의 매력 포인트는 다양한 캐릭터들인데, 슈퍼컴이 선정한 유토피아 37대 위원장으로 진정한 리더로 성장해 나가는 LE, 다른 유토피안보다 열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지구로 가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PL, 유토피아의 재정부 장관으로 재정 낭비를 참지 못하는 완벽주의자 FI, 유토피아의 과학부 장관으로 슈퍼컴을 개발한 SC, 마지막으로 영생이 축복인 세상 속에서 끝없이 죽음을 꿈꾸는 반항아 DA까지 우리가 사는 사회 안에서도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은 친근하면서도 다양한 캐릭터 설정이 인상적입니다.
이 작품에는 우리가 한 번쯤 떠올려보았을 엉뚱한 상상들 또한 들어있습니다. 슈퍼컴 AI, 영생, 복제, 감정 조절 캡슐, 거리 유지 장치 등 흥미로운 설정과 더불어 지구인들(관객들)이 근심과 걱정을 잠시 잊고 신나게 웃기를 표방하는, 위트 있는 작품입니다.
한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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