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 가슴에 손을 얹고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서, 그저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그 생각마저 멈출 때. 종종 아주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거나 극도로 무기력한 상태가 되어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런 순간이 혹시 찾아온다면 가만히 가슴 한복판에 손을 올려보세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심장만큼은 쉼 없이, 부단히, 계속 그리고 아주 열정적으로 뛰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가는 일’을 하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프랑스 작가인 ‘마일리스 드 케랑갈(Maylis de Kerangal)’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2014년에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소설은 어떤 하나의 심장에 대한 하루의 기록을 다루고 있습니다.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 판정을 받은 19세 청년 시몽의 장기가 51세여성 끌레르의 몸에 기증되기까지, 긴박하고도
가슴이 아린 24시간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원작 소설은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연극에서는 배우 한 명이 서술자이자 다양한 캐릭터로 등장해 사건의 전후 관계와 관계된 이들의 감정을 생생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1인극의 형태로 각색되었습니다.
하나의 심장이 다른 신체에 깃드는 과정은 정말 많은 사람의 결단과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사실 ‘장기 기증’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가 콘텐츠와 매체에서 다루어질 때는 ‘슬픈 기적’으로서의 단면만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기증자의 안타까운 사고와 힘겨운 결단, 수혜자가 기적적으로 새 생명을 얻거나 혹은 그것이 좌절되는 것. 그런데 이 작품은 관객들이 장기 기증을 둘러싼 더욱 다양한 시각과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한 명의 배우가 심장 기증자인 시몽, 그의 연인, 슬픔에 잠긴 부모, 죽음을 선고하는 의사,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장기 이식 수혜자, 수술 과정을 연결하거나 집도하는 의사 등 다양한 캐릭터를 100분 동안 연기합니다. 하나의 심장에 아로새겨진 기억과 기록이 고도로 정제된 영상과 조명, 음향과 함께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과정은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의 감동을 배가시킵니다. 왜 이 이야기가 ‘연극’이어야 하는가 하는 이유는 시몽이 좋아하던 바다의 파도 소리와 심장 박동 소리가 어둠을 뚫고 관객들에게 닿을 때 그리고 공연 후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표정이 증명합니다.
지난 2019년, 2021년, 2022년에 이어 네 번째 공연으로 돌아온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지난 시즌에 참여했던 손상규, 김신록, 김지현, 윤나무 네 명의 배우가 모두 출연하고 있습니다. 4인 4색의 목소리로 진정성 있게 배우들이 전해주는 하나의 심장을 둘러싼, 비극이자 기적인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게 됩니다. 삶의 가능성, 잠재력 그리고 ‘지금 이렇게 살아 있구나’에 대한 생생한 인식. 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고, 살아 있는 한 삶이 주는 선물을 반드시 받게 될 것입니다.
한아름 기자
INFO
일시 | 2024. 01. 20(토) - 03.10(주일)장소 | 국립정동극장
티켓 | 전석 5만 5천 원
관람시간 | 100분
관람연령 | 14세 이상 관람가
문의 | 국립정동극장 02-751-150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