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연결된 고통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심각한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다른 구성원들도 그 고통을 나누고 함께 경험합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사회적인 문제나 재난 상황에서도 많은 사람이 공유된 고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 연결성에 의해 형성된 공감과 상호 의존의 결과입니다. 반대로 내가 느끼고 있는 고통을 이야기했는데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입니다. 당황스럽고 화도나고 ‘세상은 원래 이런 건가?’라는 생각도 하게 되죠. 그리곤 내가 누군가의 고통을 들었을 때 적어도 그보다는 더 반응을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내과 의사이자 의료인류학 연구자인 저자가 외국인 노동자 의원에서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삶의 깊이를 성찰하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공중보건의 시절, 3년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에서 근무했습니다. 전문의 수련을 막 마치고 나온 의사로서 그는 그곳에서 다양하게 아픈 몸들을 만났습니다. 꽤 좋은 대학과 병원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했고, 내과 의사로서 필요한 것들도 잘 갖춰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진료의 현장 안으로 들어가니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언어의 장벽, 문화의 장벽을 실감하면서 그때의 고단함과 좌충우돌했던 분투를 그저 ‘미숙’ 의 결과로만 생각하기엔 갑갑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어디가 아파서 왔냐는 질문에 여덟아홉 가지의 증상을 토로하는 사례들을 여러 번 겪으며 진단과 진료를 위해서 그들의 생활환경, 문화적 배경까지도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환자들의 고통이 제대로 해석되지 않은 상태에서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시간이 이어지고 있을 때, 그는 마침내 인류학이라는 새로운 길을 만났습니다. 

이 책은 친절하게 의료 지식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질병과 고통에 대한 인류학적인 해석을 도와줍니다.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를 들으며 때로는 의사의 마음이 되기도 하고, 함께 고통을 느끼는 환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에 나의 고통을 맞대어 보며 외국인 노동자 ‘환자’로서의 삶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다양한 고통의 목소리들이 하루도 끊이지 않은 시대, 목소리를 잃은 고통이 언젠가 나의 것일 수도 있음을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해석하고 줄여보고자 하는 작은 노력이 결국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기록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존재하는 거대한 고통의 일부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거나 적으나마 해석의 여지를 늘려주었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 고통에 개입하거나 고통을 완화시키기에 수월하기를, 또 다른 누군가의 문화적, 심리적, 사회적, 신체적 고통이 잠시나마 줄어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맺음말 중에서-

현대 의학의 치료법은 발전하여 인간의 수명이 늘고 있지만, 환자 개개인이 겪는 질병의 서사에서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병원에 있지 않은 사람은 돌봄 받지 않아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어릴 때 누군가의 돌봄을 받았고, 나이가 들면 또다시 돌봄이 필요합니다. 돌봄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은 결국 평생 돌봐지거나 돌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직접적인 치료는 할 수 없을지라도 누군가의 고통이나 증상, 아픈 몸이 말하고자 하는 목소리를 들어주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더 나은 돌봄을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며 많은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선명한 한 가지가 남습니다. ‘우리가 연결될수록 고통은 줄어든다’라는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눈감지 않고 함께 아파하는 연대를 통해 아름다운 사회를 향해 나아가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