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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곰방 나을 꺼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3-09-08 (금) 10:46 조회 : 36
고3은 제게도 퍽이나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막바지인 11월이 되자, 저의 체력은 끝내 힘겨운 공부를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대상 포진으로 가슴과 등에 포진이 생겨 몇 주를 고생한 후에, 덤으로 심한 피부병을 앓았습니다. 팔에 부스럼이 몇 개 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그 부스럼들은 온몸으로 번졌습니다. 부스럼 하나하나가 벌겋게 돋아나서 꼭지가 누렇게 변한 후 그것이 터지면서 진물이 솟기 시작하는데, 불과 며칠 만에 그런 부스럼이 팔다리와 온 몸통에까지 빽빽하게 났습니다. 가렵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가려움 때문에 24시간 내내 거의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대학 입시는 뒷전이고, 죽지나 않았으면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의사는 열 개가 넘는 알약을 하루 세 번 먹으라고 처방하면서, 부스럼에 연고를 바르는 방법까지 일러 주었습니다. 모든 부스럼에 연고를 일일이 바른 후 비닐로 싸매고 있다가, 매일 저녁 비닐을 풀어내고 부스럼을 물로 깨끗이 씻은 후 다시 연고를 바르고 비닐로 싸매는 것이었습니다. 부스럼으로 달 표면처럼 되어버린 두 팔과 두 다리 그리고 몸통. 거기에 연고를 바르고 하루 종일 비닐로 싸맸다가 저녁에 풀면 진물로 엉겨 붙은 부스럼에서는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저 자신조차도 부스럼을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눈을 감고 비닐 위로만 손톱으로 찍어가며 가려움을 달랠 뿐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욥의 고통이 바로 이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문둥병의 일종은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되었습니다.

매일 이 부스럼을 씻는 역할을 자처한 것은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저녁마다 밖에서 물을 끓인 후 커다란 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아서 방으로 들고오셨습니다. 며칠 동안 잠을 못 자서 축 늘어진 저를 일으켜 앉히고, 온몸에서 비닐을 벗겨낸 다음, 썩은 냄새로 진동하는 부스럼을 하나하나 씻으셨습니다. 아버지는 표정 하나 찌푸리지 않고 몇 시간 동안이나 제 몸을 씻고, 연고를 바르고, 비닐로 부스럼을 싸매셨습니다. 중간중간 “걱정하지 마라. 곰방 나을 꺼다”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는 “금방”이라고 하지 않고 “곰방”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셨는데, 이 “곰방”이라는 아버지의 표현에는 이상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반드시 다가오게 되어 있는 미래를 확 앞당겨 보여주는 듯한 마력 같은 것 말입니다.

수백 개가 넘을 것 같은 부스럼 하나하나에 연고를 바르고 문지르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혹시 우리 집에 온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게 뭐길래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의문도 생겼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고, 저도 아들을 키워가면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씩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고통이 내 고통보다 더 아프게 느껴지는 아버지 사랑을 뒤늦게 경험했습니다. 그제야, 부스럼을 싸매주었던 제 아버지의 행동은 그가 천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였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프고 상처받을 때, 하나님은 함께 아파하면서 상처를 싸매고 연고를 바르면서 “곰방 나을 꺼다” 하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신”이기에 앞서 “아버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최형구 목사 (보리떡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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