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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1-02-09 (화) 11:18 조회 : 302
이쁘기만 한데

투숙객에 대한 호텔의 ‘환대’는 최고입니다. 이름 붙은 고급 호텔일수록 환대의 ‘별’이 더 붙겠지요, 별 다섯!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을 때였지요. 지인들이 찾아와 여러 날 차를 몰고 서부 여행을 하던 중 뉴멕시코 ‘하얀 사막(White Sands)’ 의 허름한 호텔(Inn)에서 하룻밤을 묵었답니다. 오래되었지만 깨끗하게 잘 정돈된 호텔이었습니다. 싼 방값에 비해 ‘상태’가 괜찮았던 거지요. 조식도 나쁘지 않았고, 직원들이 더없이 친절했습니다. 환대받는다는 느낌이었다 할까요. 



그런데 그들의 환대가 거저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숙박비를 냈고, 그 돈에 침대와 욕조, 아침 먹거리가 포함되었고, 그뿐만 아니라 호텔의 환대 값까지 들어 있었던 겁니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돈’으로 ‘환대’를 산 거지요. 다만, 우리가 낸 ‘돈’에 비해 그들의 ‘환대’가 융숭했던 겁니다. 체크아웃하는데 데스크에서 직원이 종이 한 장을 내밀어요. 투숙평가, 소위 ‘평점’을 적어 달라는 거였습니다. 가능하면 좋은 평가를 해 달라고 애교 섞인 부탁을 곁들이더군요. 

그들의 ‘환대’는 별 다섯 개의 ‘평가’를 위한 것이고 그걸 근거로 홈페이지 홍보에 사용하려는 전략이기도 했던 겁니다. 그게 꼭 나쁘다 할 건 아닙니다. 비즈니스를 위한 환대라 해서 그것이 위장된 환대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까닭입니다. 환대와 평가의 균형이 더 나은 서비스가 된다면 투숙객에게도 좋은 일이니까요. 여튼 그들의 환대는 ‘조건 붙은 환대’였고, 자본의 세상에서 이런 환대는 어딜 가나 흔합니다. 물론 돈을 많이 들일수록 더 큰 환대를 받게 되겠지요. 

귀국 전, 한국에서 이사 온 가족의 ‘정착’을 도와준 일이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의 우물가란 그런 것이더군요.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도와준 것이 아니라, 도와주고 나니 ‘좋아지는 사람’이 됩니다. 잘 아는 사람이어서 도와준 것이 아닌데, 도와주고 나니까 잘 알게 되는 겁니다. 다른 이유를 붙이지 않고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 한 바가지 같은 것이더랍니다. 조건 없는 환대의 기쁨이 그 바가지에 들어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고 내려오신 하나님의 방문, 창세기 18장은 ‘아브라함의 환대’가 돋보이는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어떤 조건도 달지 않고 극진히 손님을 맞았습니다. 창세기 19장에는 ‘롯의 환대’ 이야기도 나옵니다. 롯의 환대 또한 조건이 달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롯의 환대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환대의 값으로 자기 두 딸을 내어주었더라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무리’입니다. 손님에게는 지극한 ‘환대’인지 모르겠으나, 두 딸에게는 ‘적대’의 메시지가 됩니다. 

사사기 19장의 이야기는 창세기 19장을 닮았습니다. 손님의 첩과 자기의 딸을 함께 내어주는 ‘환대’는 그 성 사람들의 ‘적대’와 무엇이 얼마만큼 다른 것이었을까요? 레위인 한 사람을 대하는 지극한 환대가, 첩과 딸에게는 더없이 모진 적대가 되고 맙니다. 환대의 차별성, ‘누구나’에게가 아닌 선별적 환대가 또 다른 적대를 만듭니다. 때로는 나의 환대에 상처받을 누군가가, 더러는 그의 환대에 상처 생길 내가… 그렇게 우리는 두렵고 무서운 세상을 만드는 건 아닐까요. 

글머리에 인용한 넉 줄 문장은 판화가 이철수 선생의 책에서 따온 겁니다. 꽃은 다 예쁘다지요. 화원의 장미만 아니라, 들에 흐드러진 꽃들도 다 ‘예쁜 꽃’인 겁니다. “이 꽃 저 꽃… 예쁘지 않은 꽃”은 없습니다. 어디 꽃만 그럴까요. 나무도 풀도 그렇습니다.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습니다. “벼와 한 논에 살게 된 것을 이유로 ‘잡’이라 부르” 는 걸 ‘차별’이라 하던가요. 남의 땅에 들어와 사느라 고생인 사람들이 ‘잡’은 아니지요. 주님 눈에는 <이쁘기만 한데> 말입니다.

이창순 목사 (서부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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