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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0-12-07 (월) 10:28 조회 : 108
책임을 묻다

‘역학’은 질병의 원인을 찾는 학문입니다. 지금 전 세계는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지요. ‘코로나 사피엔스’라는 새로운 용어가 출현할 정도로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시대는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언제, 어디서, 왜 시작되었는지를 파악하고 규명해서 감염의 확산을 막아내는 것이 바로 역학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고대 보건과학과 교수로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원인을 ‘사회 속에서’ 찾고 이를 막을 방법을 밝히는 일입니다. 특히 저자는 인종, 빈부, 성별 등에 따른 차별과 사회적 고립, 고용불안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합니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책임을 물어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꿈으로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저자의 잘 알려진 대표적인 연구로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건강연구’, ‘단원고 학생 생존자 및 가족 대상 실태조사 연구’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 책은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공통적인 사회역학의 연구 결과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 집단이 더 크게 고통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보통 의료기술의 발전을 떠올리지만,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이는 근본적인 해법이 아닙니다. 그는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 소득이 없는 노인, 차별에 노출된 결혼이주여성과 성소수자가 더 일찍 죽는다는 것입니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 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 있던 아기 중 4명이 한꺼번에 사망했던 비극적인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당시 이런저런 원인을 파악했지만, 감염이 됐든 어쨌든 한꺼번에 4명의 아기가 죽은 것은 인재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미국 간호사는 1인당 5명의 환자를, 일본은 7명의 환자를 돌보는데, 우리나라 간호사는 1인당 12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자꾸 젊은 노동자들이 죽습니다. 2인  1조로 현장을 나가야 하는데 혼자 내몰려 일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는 박쥐에서 발원했다고 알려졌지만, 박쥐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환경을 파괴하고, 야생동물의 터전을 침범하고, 그들을 무분별하게 포획해서 잡아먹은 인간의 잘못을 반성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교만과 무질서, 자연에 대한 공격성이 만들어 낸 질병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은 불평등합니다.

최근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부유한 지역보다 불법 이민자나 유색인종이 사는 지역에서 코로나19 사망률이 더 높았다는 보도를 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분석에 의하면,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대부분이 가난한 흑인이나 이민자이고, 이들은 미국의 비싼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사망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회역학이 찾아낸 질병의 사회적 원인인 것이지요.



코로나19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가 늘어났다고 합니다. 재난 상황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는 더 쉽게 해고당하고, 이후에도 실업급여와 같은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자영업자들은 방역에 협조하기 위해 영업을 강제 중단해야 했지만, 건물주의 임대 사업은 쉼 없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저 착한 건물주가 되어달라고 호소할 뿐이지요. 이주노동자들은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없고, 저소득층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급식을 먹지 못해도 돌봐줄 사람이 없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교회도 불가피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집합금지 명령을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여 비대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국가가 종교의 자유를 탄압하고 있고, 자신들이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교회가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제일 약자다. 내 입장부터 들어 달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에게 재난이 더욱 가혹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기본적인 방역 협조는 물론이고 모두가 어려운 가운데 특히 더 고통받는 이웃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의 여러 역병처럼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지금의 이 아픈 시간이 ‘길’이 되려면, 우리는 더 많이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서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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