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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툴루즈 로트렉展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0-08-25 (화) 12:54 조회 : 47
짧은 인생 불꽃같이


<툴루즈 로트렉展>의 앵콜전시가 9월 13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다시 열렸습니다. 로트렉의 전시는 2007년부터 그리스, 미국, 이탈리아 등지에서 순회 중이었습니다. 본 전시는 14번째로 진행되었던 서울 전시의 연장선으로 코로나로 인해 관람하지 못했던 시민들에게 다시 한번 관람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로트렉의 드로잉,판화, 스케치 등을 비롯하여 약 150여 점의 다양한 작품과 함께 5월까지 진행되었던 전시에 보강하여 유화 작품 8점을 미디어아트로 재현하였습니다. 이전 전시에서 호응이 좋았던 마지막 영상에도 비하인드 스토리를 추가하여 감동을 더 해줍니다. 이전보다 업그레이드된 디자인 콘셉트로 전시장을 찾는 새로운 관객은 물론 이미 관람한이들에게도 색다른 볼 거리가 될 것 입니다.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와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으로 불리는 툴루즈 로트렉은 19세기 후반,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와 밤 문화의 상징인 물랭루즈 등을 무대로 파리 보헤미안의 라이프 스타일을 그만의 감각으로 그려낸 프랑스 화가입니다. 야외의 자연 빛을 화폭에 담으려 했던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달리, 실내의 인공조명을 선호하며 천부적인 감각과 재능으로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나갔는데요. 몽마르트에 댄스홀 ‘물랭 루즈’의 오픈은 로트렉의 작품세계에 큰 변혁을 맞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랭 루즈는 유명인사들이 드나드는 최고의 사교장이자, 로트렉의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펼쳐졌던 공연과 사람들의 모습은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매일 밤 물랭 루즈를 드나들면서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그림에 담아 매일매일의 삶을 기록하는 일기장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빠른 손놀림으로 그림을 그렸고, 그는 파리의 유명 인사로 벨 에포크를 대표하며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천재였지만 그는 고독했습니다. 백작의 작위를 가진 아버지와 서로 사촌 간이었던 어머니로부터 귀족의 혈통과 재산, 예술적인 재능, 특이한 취향과 기질뿐 아니라 유전적인 결함도 물려받았습니다. 그런 탓에 어릴 때부터 병약하여 성장이 더뎠습니다. 14살과 15살 때 넘어져서 좌우 허벅지 뼈가 차례로 부러진 뒤로는 키가 거의 자라지 않아 137cm 정도의 키에 과도하게 짧은 하반신으로평생 지팡이에 의지하여 걸어야 했습니다. 이런장애로 그의 아버지처럼 승마와 사냥을 즐기는,전원 귀족의 생활을 누리는 것이 불가능해진 그에게 치료과정의 일부였던 그림이 그의 목소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소외받는 아픔과 신체장애에 대한 한으로 외로움과 슬픔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카바레의 댄서와 가수, 매춘부와 서커스 단원의 모습 뒤에 가려진 인간적 비애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고 그만의 미적 감각으로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의 핸디캡은 오히려 그의 자랑이었습니다. 자신의 외모로 인해 귀족들과 단절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소외당하는 자들에게서 느낀 동질감과 연민으로 예술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장이나 미화 없이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리며 아무런 편견 없이 바라보고 이해했기에 그는 성공한 예술가였습니다. 그는 37년의 짧은 생애 동안 5,000여 점의 많은 작품을 남기며 미술 작품이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비록 짧았지만 드라마틱했던 그의 생애는 오늘날 현대 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가 품고 살았던 생각 때문이아닐까요?

“언제 어디서나 추함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곳에서 그것들을발견하는 것은 매우 짜릿하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권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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