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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선량한 차별주의자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0-07-06 (월) 11:55 조회 : 130
내가 차별주의자라니

책은 프롤로그부터 흥미로웠습니다. “당신은 차별이 보이나요?”라는 제목을 달고 ‘결정장애’라는 말에 얽힌 저자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결정장애,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혐오 표현에 관련된 토론회에 참석해서 이제 우리 모두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을 하며 결정장애라는 표현을 썼다고 합니다. 토론회가 끝나고 식사 장소로 이동하는 중에 한 사람이 저자에게 와서 물었답니다. “그런데 아까 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셨어요?” 저자는 그게 질문이 아니라 ‘지적’이었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이후에 겪게 되는 저자의 심리적 변화가 흥미롭고 크게 공감이 갔습니다.


저자는 일단 자책을 합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집에 가서도 계속 그 상황이 머릿속에 맴돌아 되씹고, 곱씹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동시에 나의 마음 한쪽에서는 희한한 생각이 자라고 있었다. ”두 번째 단계,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입니다. “그 말이 왜? 뭐가 문제야?” 이건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다른 혐오 표현들에 비해 심각한 수준의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이 농담처럼 사용하고 있는 아주 사소한 문제라고 합리화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저자는 이쪽으로 훈련이 잘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문제가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장애인 인권운동 활동가에게 자문을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장애’라는 말을 비하의 의미로, 무언가 부족하고 열등한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게 ‘병신’이라는 욕이지요. 이것은 정치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야구선수가 어이없는 실책을 했거나, 친한 친구가 귀여운 실수를 했을 때 거리낌 없이 내뱉는 말입니다. “절름발이 지식인, 절름발이 행정”, “꿀 먹은 벙어리”, “돈에 눈이 멀었다”, “가사를 절었다”와 같은 표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들은 눈앞에 있는 어떤 장애인을 직접적으로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애인을 비정상적이고 모자란 존재라고 여겨온 역사적 맥락과 관념 속에서 만들어진 표현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세 번째, 부정의 단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내가 장애인을 차별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본인이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이 있었고 그들의 인권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를 죽 늘어놓으며 혼란스러워합니다.

결국 저자는 네 번째, 깨달음과 인정의 단계에 들어서게 됩니다. 본인이 비정규직으로 일할 때 여러 가지 사소한 것들로 분명히 차별을 받았는데, 당시 주변 사람들은 그게 차별인지 눈치채지 못했었던 개인의 과거 기억을 소환하며, 차별은 원래 차별당하는 사람 눈에 더 잘 보이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경계하게 됩니다. “이제 나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 자신도 모르게 차별적인 말이나 행동이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엄청 조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만 머물면 불행한 일입니다. 이웃을 배려하는 것이 피곤한 일로만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그래서 본격적인 연구를 하기로 결심합니다. 소수자 집단을 향한 모욕적인 말들을 수집하고, 그런 혐오 표현

안에 어떤 차별적인 관념이 담겨 있는지 분석합니다. 이런 연구 끝에 저자는 결국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신화일 뿐이었다.” 차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나는 선량한 시민이야. 나는 친절한 이웃이야.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 이렇게 스스로를 믿고 있고 변명하는 사람들을 ‘선량한 차별주의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다루고, 2부에서는 차별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정당한 차별’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3부에서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차별에 대응해야 하는가를 정리합니다. 이 책은 우리를 차별주의자라고 부르기 때문에 불편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겪었던 심리적 변화가 내 안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걸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불편함을 넘어서야겠지요. 그동안 차별의 눈길과 말들로 더 크게 아팠을 이웃들을 돌아보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서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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