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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월터스토프 하나님의 정의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0-04-13 (월) 10:56 조회 : 154
학대받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하는 정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니콜라스 월터스토프는 신
학적 기반 위에서 정의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풀어갑니다. 그러나 그의 정의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두 번의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개인적 경험이었습니다. 그는 1975년 9월,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남아공을 방문합니다. 당시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아래 있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분리, 격리’라는 뜻으로 남아공에서 1948년부터 1994년까지 행해진 인종차별 정책을 말합니다. 또한, 그는 1978년 5월, 시카고에서 열린 팔레스타인의 권리에 관한 학술대회에 참석합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는 남아공에서 아프리카너들과 유색인들을 만나고 정의에 대한 망각에서 깨어났으며, 팔레스타인인들을 만난 후에는 확실하게 깨어나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동안 학대당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소식
을 글과 화면을 통해 접했을 때는 그저 안타까운 에피소드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눈앞에서 울부짖는 사람들과 대면하고, 그들의 삶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으며 그들의 존재에 무차별적으로 가해지고 있는 불의를 직접 보고 듣는 경험을 통해, 월터스토프는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정의에 대한 정의를 거부하고, 개인적인 슬픔과 애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편에 서기 위한 실천적이고 적극적인 운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월터스토프는 정의 담론이 학대받는 사람들로부
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시혜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논하는 정의는 자기중심적이고 온정주의적으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존엄하고, 누구에게도 모욕을 당하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의로운 세상은 학대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약간 덜어주고자 하는 선의나 호의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고, 절대적으로 모든 사람의 존엄과 권리가 지켜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흙수저와 금수저가 동일한 출발선에서 동시에 출발하는 것은 공평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습니다. 가난은 개인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조직적 불공평과 불의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의는 금수저가 흙수저에게 가진 것을 나누거나 출발선을 다르게 그어주는

것입니다. 어쩌면 월터스토프의 정의가 더 이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들릴 수 있겠습니다. 정말 세상이 아프고 약한 자들 중심으로, 학대받고 고통당하는 사람들 기준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요?

교회 안에서만이라도 실천 가능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월터스토프는 성경과 교부들의 글을 토대로, 정의는 반드시 학대받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임을 탄탄하고 밀도 있게 정리합니다. 학대받는 자들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는 강퍅함의 이유를 날카롭게 분석합니다. 월터스토프가 말하는 정의에 대한 정의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가 정의롭게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합니다. 그는 이 땅에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투쟁적 실천이 필요함을 강조하는데, 그가 제시하는 투쟁의 기술이 매우 성숙하고 예술적입니다. 얄팍한 동정을 넘어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고 대우하는 것에 대해 섬세하게 알려줍니다. “봉사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된다는 것이 단지 음식을 먹고 옷을 입고 집에 거주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편견의 덫에 걸리기 쉽다. 정의는 그런 문제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간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을 훨씬 넘어선다. 인간에게 교육이 박탈되면, 그는 무례하게 취급받는 것이다. 인간이 미학적 불결함 속에 살도록 강요된다면, 그는 무례하게 취급되는 것이다. 미학적 품위의 환경에서 살 기회는 선택적 사치가 아니다. 정의가 그것을 요구한다.”

책 제목이 “월터스토프 하나님의 정의”인데 ‘하나
님’만 흰색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흰 바탕에 흰글씨로 하나님을 숨겨둔 의도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월터스토프가 말하는 하나님의 정의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나 정의이고 세상 모든 사람의 정의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강조하지 않고 오히려 하얗게 감춰둔 것은 하나님의 정의는 곧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정의, 세상 모든 것들의 정의가되어야 함을 역설한 것이 아닐까요.


서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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