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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0-04-13 (월) 10:52 조회 : 61
다 이해합니다 원망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아시면 족합니다

지난 한 주간 3번의 장례식에 가게 되었습니다. 
담당 부서의 겨울 수련회를 마치고 토요일 늦은 밤 뒷정리 중에 처음 장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본능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에 정리하면서 피곤할(?) 일정에 대한 염려와 쉼에 대한 욕구가 엄습했습니다. 이틀 뒤 지방 방문 중 다시 장례 소식을 들었습니다. 근조화를 보내고, 조의금을 준비하고, 장례식 조문 일정을 문자로 공지하고, 조가대에게 찬양준비를 부탁합니다. 다시 이틀 뒤 또 장례 소식을 듣습니다. 교회의 역할이 좀 더 분명한 장례입니다. 더 꼼꼼히 빠트리는 일들이 없도록 점검하고 또 점검합니다. 금요기도회를 인도하고, 담당 부서의 주일 설교를 준비하고, 영육간에 기쁨과 피곤함을 동시에 안고 주일을 맞습니다. 주일 오후 성도님들을 모시고 장례식장으로 가는 차를 운전하고, 예배 순서지를 나눠주고, 반주자의 도착이 조금 지체되어 건반 앞에서 조가대의 묵도 송 반주를 합니다. 앉을 자리를 미처 확보하지 못해 빈소 한쪽 구석에 서서 예배를 드립니다. 옆에 앉은 교역자가 3일 연속 장례식장에서 식사한다고 웃픈 말을 건넵니다. 주의 몸 된 교회에, 사랑하는 주님 앞에 명절 연휴를 자발적으로(?) 반납합니다. 

“다 이해합니다. 원망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아시
면 족합니다.” 고인께서 마지막에 남기신 세 마디 말씀이셨다고 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부교역자로 사는 제가 장례식에서 오랜만에 눈물을 흘리는 아이러니(?)를 경험합니다. 추모는 고사하고 장례를 일정으로 받기 십상인 제 마음에 고인께서 남기신 말씀이 문을 두드립니다. ‘죽음’에 대한 묵상에 다시 빠져듭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시간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하고 질문합니다. 16살 되던 해 여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을 또 생각합니다. 목사에게 ‘죽음’


은 어떤 의미여야 하고, ‘죽음’의 시간을 보내는 자들에게 목사는 어떤 메시지를 남겨야 하는지를 되묻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의 사건을 맞이한 후 장례식장에 목사가 도착한 것으로 조금의 위로를 경험하

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례식장에 도착한 목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은 곧 들통이 납니다. 이것은 상주나 유가족, 장례식에 함께한 모든 조문객과 목사가 전혀 다르지 않고 모두가 한낱 ‘사람’일 뿐임을 의미합니다. 장례식에서 목사의 설교는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주메시지가 되어야 합니다. 겸손하고 낮은 목소리로 주님만 바라보자고, 주님이 구원하신다고, 주님이 생명의 주인이시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문객으로 때로는 상주로 장례식장을 방문하지
만 결국 우리는 모두 언젠가 장례식장 중앙에 놓인 사진 액자 속 주인공이 됩니다. “너는 흙이므로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창세기 3장 19절).” 이말씀을 거부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다시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 앞으로 마음을 가져갑니다. 언제일지 모를 죽음의 시간 앞에, 얼마간의 삶의 시간을 두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합니다. 생명으로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삶의 시간을 붙드시고 이끄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장례식장에서 거들먹거리지 않


고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다고, 철저히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철저히 인간의 무능을 고백하는 목사가 되기로 결단합니다. 죽음을 맞이할 때 진정한 신앙으로 주님을 뵙자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권면하는 삶을 성실히 살길 다짐합니다.

김류 목사 (영복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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