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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세기 교회 예야기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0-03-09 (월) 11:58 조회 : 28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는 75페이지짜리 무척 얇은 책이지만 놀랍도록 풍성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작은 책을 가지고 교회의 본질과 역사, 현대 예배 순서의 예배학적 의미, 교회가 다뤄야 하는 사회적 쟁점의 범위, 종교적 언어와 일상적 언어의 화합, 규모와 본질의 상관관계와 같은 다양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연구를 위해 로마와 그리스의 성서 관련 문헌과 다른 일반 문헌들 그리고 고고학과 비문에 나타난 증거들을 활용했다”라는 저자의 말과 ‘역사적 자료에 기초한 초대교회 모습’이라는 부제만 봐도 이 책의 밀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무겁거나 골치 아프지 않고, 마치 누군가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듯 가볍고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흘러갑니다.

배경은 1세기 로마, 주인공은 푸블리우스라는 청년입니다. 이 책은 그가 아굴라와 브리스가라는 유대인 부부로부터 저녁 식사 초대를 받은 어떤 하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날은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일곱째 날마다 모여서 예배를 드렸던 주일이었습니다. 그가 목도하고 우리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는 바로 초대교회의 예배 모습입니다. 이 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한 푸블리우스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열정적으로 인사를 나누거나 격렬하게 논쟁하는 모습, 그 논쟁 주제의 광범위함, 일상적인 말투로 진행되는 기도의 시간, 예전의 틀도, 사제도, 이국풍 신비주의도 없는 평범함 때문에 여러 번 놀라게 됩니다.

푸블리우스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파격적인 관계맺음에 놀랍니다. 그들은 여자와 남자, 어른과 아이, 주인과 종이 거리낌 없이 입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고, 한 식탁에 둘러앉아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누구도 누구의 시중을 들지 않고 모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했습니다. 상석에는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모임에 처음 나온 푸블리우스를 앉게 합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 유대인과 이방인, 기혼자와 미혼자, 건강한 자와 아픈 자가 한자리에 모여 있는 1세기 교회는 많은 차이가 얽혀 있었으나 차별은 없었습니다.


“아리스도불로가 자기 종의 접시 위에 음식을 덜어주는 것을 보고 나는 놀랐다. 음식을 덜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기 것과 정확히 똑같은 종류의 똑같은 양으로 담았다. 내가 자라면서 본 경험에 의하면, 해방 노예라 할지라도 그에게는 귀빈에게 주는 것보다는 덜 좋은 음식과 포도주를 주고, 그릇마저도 다른 그릇에 냈다. 종들은 식당밖에서 먹는 것이 상례였다.” 세상에는 아주 평등한 관계란 없습니다. 어디를 가나 위계와 질서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사소한 차별부터 만들어냅니다. 물을 따라주는 순서, 악수를 하는 타이밍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런 작은 차별들은 사람의 지위를 은근하면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좋은 대접을 받는 사람은 늘 좋은 대접을 받고,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는 사람은 언제나 그런 대우를 받습니다.

사실 교회 안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차별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투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르심과 사랑하심에 차별이 없으셨던 예수님처럼 교회 안에서는 어떠한 차별도 없어야 하며, 그리스도인은 몸에 배어 있던 익숙하고 사소한 차별의 습관들을 하나하나 교정하고 섬세하게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1세기 교회 모습을 통해 환기하게됩니다.

우리는 조선족, 장애인, 미혼모(부) 등 소외된 이웃과 입을 맞추고 있습니까? 교회에서 이들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상석에는 누가 앉아 있습니까? 누가 시중을 들고 누가 시중을 받습니까? 보여야 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상석에 앉을 만한 사람이 늘 그곳에 앉아 있다면 당신의 교회는 1세기 교회로부터 매우 멀어져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푸블리우스가 21세기 교회 모습을 보았다면 다른 의미에서 여러 번 놀라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1세기 교회의 모습은 21세기 우리 교회의 현주소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을 누구보다 낯설어하는 나 자신을 대면하게 합니다. 변화가 귀찮고 두려워서 본질과 멀어진 이 세계에 안주하고자 하는 게으르고 겁많은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이 1세기 교회의 정신을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서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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