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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국호텔, 지금 여기가 맨 앞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9-12-02 (월) 15:51 조회 : 10
일상이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시 두 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문재 시
인의 ‘화살기도’와 ‘오래된 기도’입니다. 시인은 ‘화살기도’에서 삼십 년 넘게 연극 무대에 서온 한 배우와 마흔 넘어 소설을 쓰기 시작한 어느 노작가에게서 전수받은 기도법을 소개합니다. 배우는 시인에게 ‘기도란 무조건 하느님께 매달리는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무조건 하느님께 요구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입니다. 시인은 평소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면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하나님과 거래를 해왔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기도는 기도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한편 노작가가 시인에게 알려준 기도는 ‘화살기도’라는 것이었습니다. ‘간절히 원하는 그 무엇이 있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화살을 날리듯이 하느님께 외치라’고 일러줍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내 아이를 걷게 해주세요, 처럼 단순할수록, 그리고 강렬할수록 화살기도는 효험이 있다’라고 팁을 줍니다. 그리고 시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수많은 생을 살아온 여배우와 또 수많은 삶을 꿰뚫어온 
노작가로부터 기도하는 법을 제대로 전수받은 것이었는데,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에게는 하늘로 쏘아야 할 화살이 너무 많아서 탈이었습니다. 제가 하늘로 쏘아 올린 첫 화살기도는 이랬습니다. “하느님, 저로 하여금 이 많은 화살을 버리게 해주세요.”

기도하는 법을 몰라 난감해하는 시인에게 배우와 
노작가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려줬는데, 시인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가 더 고민이었던것 같습니다. 종종 기도와 소원이 헷갈리기도 합니다. 또 헷갈리면 어떤가 싶기도 합니다. 다만 그 소원의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 나의 나라와 나의 의를 위한 것인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것인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럼 우리도 시인처럼 많은 화살을 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지 않겠습니까? 기도가 무엇인지 알기에 지금처럼은 도무지 기도할 수 없어서 괴로운 나날들을 통과해보는 것도 유익하겠습니다. ‘화살기도’는 2004년에 출간된 『제국호텔』이라는 시집에 실려 있는 작품입니다. 그로부터 10년 뒤, 2014년에 출간된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는 시집에도 기도에 대한 시가 실려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소개할 두 번째 시, ‘오래된 기도’입니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그렇게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이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이문재 <오래된 기도>이사야는 금식하며 기도하는 자들에게 목적이 불순하고 방법도 틀렸다고 나무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본문(이사야 58장)이 참으로 울컥하고 아름답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압박의 사슬을 풀어 주고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며 억압당하는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너희는 굶주린 자에게 너희 음식을 나눠 주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가난한 사람을 너희 집으로 맞아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고 도움이 필요한 너희 친척이 있으면 외면하지 말고 도와주어라(이사야 58장 6-7절)” 왜 이 시의 제목이 ‘오래된 기도’일까요? 시인의 뜻은 모르겠으나 ‘기도란 원래 이런 것이다’라고 읽힙니다. 기도의 기술이 너무나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삶이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서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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