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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9-11-25 (월) 15:28 조회 : 35
우리가 고난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이유



어린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뭘까요? 맞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잘 웃습니다. 영국 옥스퍼드 의과대학 연구팀이 어린아이와 어른의 웃음을 연구했습니다. 어린아이는 하루 평균 400~500번 정도 웃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하루에 고작 15~20번만 웃는다고 합니다. 만일 웃음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사람은 최소한 어린아이의 감성을 가진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울다가도 금방 활짝 웃습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일에도 크게 기뻐하고 웃는 아이들이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인간이 웃음을 잃어 가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삶의 여러 문제에서 오는 근심과 염려가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암울했던 일본의 식민지 시절, 전국적으로 미소 운동을 일으켰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도산 안창호 선생님입니다. 청일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난 안창호 선생님은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구세학당에 입학하여 기독교인이 됩니다. 
“어디서 왔나요?” “평양에서 왔습니다.” 
“평양이 여기서 거리가 얼마나 되나요?” “800리쯤 됩니다.”
“그런데 평양에서 공부하지 않고 왜 이렇게 먼 서울까지 왔나요?”
구세학당에 입학을 위해 구술시험을 치르던 중 선교사님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안창호 선생님은 
거꾸로 질문했습니다. 
“8만 리쯤 될 겁니다.” 
그러자 안창호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교사님은 8만 리 밖에서도 서울에 가르치러 왔는데 겨우 800리를 제가 못 오겠습니까?”
불과 14살의 어린아이가 여유롭게 유머로 맞받아친 것을 보면 그는 유머를 아는 사람이고, 일찌감치 지도자감이었습니다. 그는 우리 민족이 따뜻한 마음을 갖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질투하고 증오하여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을 늘 안타까워했습니다.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차오?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소” 하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웃음을 통해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일깨우고 민족의 자긍심을 갖게 하고자 했습니다. 어린이는 ‘방그레’, 노인들은 ‘벙그레’, 청년들은 ‘빙그레’ 웃자며 미소 운동을 펼치며, 나라 잃은 사람들의 마음에 위안을 주었습니다.

로마에서 기독교 박해가 일어날 때, 로마인들은 
기독교인을 붙잡아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여 길가에 세워 밤을 밝히는 가로등처럼 대했습니다. 콜로세움에서는 사자와 대결시키며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선배들은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두려웠지만 죽음 앞에서도 웃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인생의 고난 가운데에 있을 때 어떻게 웃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님! 미국은 서울에서 몇 리나 됩니까?” 우리가 죽음 앞에서, 절망 앞에서도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 때문입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설령 육체의 고통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우리의 모든 것을 파멸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즉, 우리에게서 구원을 빼앗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곳곳에 향기처럼 퍼지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고린도후서 2:14).” 사도바울은 감옥에 있었지만, 그리스도를 아는 향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나타낼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웃음은 약하지 않습니다. 특히 복음의 기쁨으로 
인한 웃음은 어떠한 것보다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기쁨을 가지고 어린아이와 같이 웃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누군가의 우스갯소리에 크게 웃어줄 수 있는 여유를 가져봅시다. 웃음을 잃어버리게 하는 근심과 걱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봅시다. 어떤 상황에도 웃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복음이고, 전도이기 때문입니다. 


차길영 대표 (세븐에듀 & 차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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