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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9-09-24 (화) 10:45 조회 : 41
고독의 찬송

“달라스, 뭐가 제일 좋으세요?” 이곳에서 만난 분들에게 간간이 듣는 물음입니다. 뭐 대단한 궁금함이 아니라는 걸, 그저 오가는 인사치레의 하나라는 걸 알지요. 그래도 주저 없는 대답에 빈말이 섞어지진 않습니다. “하늘이요. 그리고 구름이요.” 이민 가방 여덟 개를 차에 싣고 공항을 빠져나오면서 아내가 한 첫마디가 ‘하늘이 참 넓다’라는 것이었는데, 그때 처음 달라스의 하늘을 보았습니다. 넓고, 참 예뻤습니다. ‘하늘 아래’ 아닌 세상은 없겠으나, 다 ‘같은 하늘’은 아니구나 싶었던가요. 이렇게 예쁜 하늘도 있다는 걸 보았고, 알았고, 그 하늘이 내 ‘가장 좋음’의 대답이 되어 지내고 있습니다. “이 동네는 산이 없어.” 생각 없이 툭 내놓은 말을 아내가 받더군요. “이 동네가 아니라, 여기는 어딜 가든 산이 없어.” 저 강원도 정선 구절리로 ‘한가족수련회’ 다녀온 게 기억납니다.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그 깊은 산골에는 해도 참 빨리 지더군요. 해가 산을 넘으면 바로 저녁이 돼요. 쉬이 캄캄해진 마을에는 그 긴 밤 지내는 ‘이야기’도 길고 깊겠지요. 산이 없는 이 동네는 넓은 하늘만큼 낮도 길어요. 서둘러 시작된 아침에서 급할 것 하나 없는 저녁으로 이어지는 긴 낮, 어쩌면 그것은 빛의 횡포이기도 할까요. 긴 낮을 보내는 이곳 한인들은 ‘이야기’보다 ‘사연’을 더 많이 만들며 살던가요.

해가 저쪽 집 지붕을 넘어선 초저녁(?). 아직도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더랍니다. 그 하늘이 아까워 그늘졌던 벤치에 누웠다지요. 하늘을 손 뼘 재보고, 구름을 세어보고, 구름 모양에 이름을 붙여 보기도 하며 장난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참을 지나 저만치 토끼 모양 구름이 바람을 타고 누운 곳을 찾아오더니, 제 얼굴 위에서 흩어지더랍니다. 아, 그 연한 신비감을 뭐라 말해야 할까요.  바람이 저만치 더 몰아낼 때까지 흩어지는 구름을 따라갑니다. 손을 내밀어 보고, 입을 벌려 소리를 내 보고, 끝내는 시선 끝에서 눈물을 뚝 흘려 보지만, 구름 실은 바람은 그저 하염없고 유유할 뿐입니다. 고독을 “밥처럼 먹고 옷처럼 입는” 인생이 있지요. 아, 인생은 누구나 그렇던가요. 긴 밤을 지내거나 그보다 긴 낮을 보내는 인생, 그 누구랄 것 없이 말입니다. 하기야 예수께서도 외롭고 긴 밤을 보내셨고, 그 밤보다 더 긴 낮을 고독으로 보내셨으니까요. 십자가에 달리신 그 하늘은 달라스만큼 예쁘지도 않았다지요. 그 눅눅한 하늘 아래, 그분은 얼마나 고독했을까요. 딱하고 안쓰러운 일인데, 그게 또 그렇게 부러운 일이랍니다. 일찍이 시인 동주는 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괴로웠던 사나이”라고 했다가 다시 “행복한 예수”라고 부르기도 했다지요. 자기가 당할 ‘고독–십자가’를 그리워하며 말입니다.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어 있는 “쫓아오던 햇빛”은 너무 멀고 높아요.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더 고독한 거지요. ‘영구불변’이고, 게다가 시도 때도 없어요. 하지만 나쁜 고독은 없는 것이어서, 고독은 제 온몸으로 성전이 되는 것이어서, ‘고독’이 없으면 ‘지어짐’도 없는 법이지요. 구름은 멀리 흩어졌고, 해는 떨어져 캄캄해졌고,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밤이 되었으니,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가만히 모가지를 드리워야겠습니다. 어쩌다 고동 소리를 고통 소리로 잘못 읽은 어느 날, 고독의 찬송을 함께 나눕니다. 샬롬.^^

고독의 찬송
고독이 날마다 나를 찾아온다 
내가 그토록 고독을 사랑하사 
고(苦)와 독(毒)을 밥처럼 먹고 옷처럼 입었더니
어느덧 독고인이 되었다
고독에 몸 바쳐
예순여섯번 허물이 된 내게
허전한 허공에다 낮술 마시게 하고
길게 자기고백하는 뱃고동소리 들려주네
때때로 나는 고동소리를 고통소리로 잘못 읽는다
모든 것은 손을 타면 닳게 마련인데
고독만은 그렇지가 않다 영구불변이다
세상에 좋은 고통은 없고 
나쁜 고독도 없는 것인지 나는 지금 공사중인데
고독은 제 온몸으로 성전이 된다 

천양희 <성(聖) 고독>

이창순 목사 (서부침례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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