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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역사에서 사라진 그녀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9-06-17 (월) 10:38 조회 : 207
기독교 여성사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

흔히 ‘역사는 강자의 편’이라고도 하고, ‘역사의 주인공은 민중’이라고도 합니다. 역사를 누가, 어떤 눈으로, 어느 자리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소환되는 얼굴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긴 사람과 진 사람의 이야기, 강자와 약자의 이야기,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 모두를 아울러 들어봐야 역사적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이후의 신학을 개혁신학이라 부르고 이를 정통신학, 즉 ‘바른 계통’의 신학이라 칭해왔으나 이것이 곧 완전함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정통신학으로부터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잔치에 청하는’ 혁명적이고 급진적인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볼 수 있는 안경을 획득했습니다. 이 안경을 쓰고, 문화적 차이와 시대적 한계를 넘어 기독교 역사를 재조명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당면한 시대적 이슈와 갈등을 해석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입니다. 정통의 언저리로 가는 것, 소수라고 불리고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정통신학의 정통성, 기독교의 본질에 다가가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한국인 여성 신학자가 쓴 최초의 기독교 여성사로,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기독교 역사를 여성주의 관점으로 읽어내고 있습니다. ‘기록에서 배제되거나 기억에서 지워진 여성들의 목소리를 되살려’ 그들의 지위와 역할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이는 남성과 여성을 가해자와 피해자, 강자와 약자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편 가르는 것이 아니라, 여성은 ‘배제된 자의 대명사’이기 때문임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여성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잃어버린 역사의 조각들, 주목받지 못하거나 외면당했던 신학과 이름이 특정되지 않은 시대의 군상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듯, 기독교 여성사 연구는 체제 전복적이고 권력 저항적이었던 예수의 설교를 복기하여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 나라를 들여다보도록 안내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향하던 예수의 시선과 섬김을 기억하게 함으로 인간의 존엄과 만인의 평등한 가치를 회복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이 책은 고대 로마 박해의 시대(1부)부터 시작해서 중세 기독교 제국 시대(2부)와 근대 시민사회를 통과한 서구 기독교(3부)가 어떻게 동아시아로 건너와 정착(4부)하게 되었는지, 역사의 굵은 흐름을 따라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시대마다 중요한 사건들과 다양한 이슈들을 살피되 주변부에 있던 사람들, 희미한 사람들, 채색되지 않은 사람들
의 대명사였던 ‘여성’들을 이야기의 중심부로 옮겨놓고 기독교 역사를 새롭게 고찰합니다. 이단과 마녀로 내몰리거나, 가부장제가 규정해온 여성성 안에서 타자화되고, 남성들의 지도와 문명화가 필요한 무지하고 야만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비단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여성 혐오 발언이 난무한 강단, 교회 안에서 은밀히 자행된 여성에 대한 폭력, 가부장적 지배체계 아래 합리화되어 온 모든 관행, 결국에 기독교는 개독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말았습니다. 이럴수록 우리는 역사가 보여주는 통찰 앞에서 겸허해져야 합니다. 저자는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이 누군가 만들어 놓은 단일한 프레임과 협소한 시각에 갇히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책을 구상했다고 말했습니다. 주체적으로 역사 앞에 서서 다양한 시선을 마주할 때 우리는 더욱 풍성한 예수의 가르침을 누리고, 그가 보이신 평등 공동체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여성들의 분투를 ‘안드로포스를 향한 여정’이라고 소개합니다. ‘안드로포스’는 사람이라는 뜻의 헬라어입니다. 하늘을 보는 사람, 영적인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는 모든 사람에게 ‘안드로포스(온전한 사람)’가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안드로포스는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행하는 사람 등 여러 가지로 풀어 읽을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예수는 남녀 모두를 안드로포스를 향한 여정에 초대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방인도 노예도 예외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기존 질서를 뒤집는 전복과 반전의 메시지였습니다. 저자의 담백하고 긴 호흡을 따라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역사에서 사라진 희미한 그녀들이 표지 그림의 막달라 마리아처럼 선명하게 채색되어 강렬한 눈동자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녀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금까지 거기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깨
닫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그녀들을 볼 수 있는 우리들의 눈이 뜨인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들의 안드로포스를 향한 여정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소수자들, 을이라는 지위의 노동자들, 이주민들, 난민들, 온갖 편견과 차별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희미한 모습이 채색되고 그들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올 때야 비로소 그들도 우리도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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