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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9-03-18 (월) 10:18 조회 : 55

영화를 음미하다

영화 <가버나움>
왜 '가버나움'일까?

작년 칸 영화제에서 이 영화 주인공 소년이 남우주연상을 타지 않을까 하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영화제 측에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상을 받는다고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상을 탈 예정이니 빨리 돌아가지 말라는 귀띔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영화 <가버나움>은 심사위원상을 받았습니다.

레바논 출신 여성 감독의 작품으로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까지 올라 <가버나움>을 향한 영화계의 뜨거운 사랑은 아직 식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에도 1월 24일 개봉해 상영 중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 영화를 보셨나요? 1월 초 영화 업계에 있는 관계자들과 언론인들이 먼저 영화를 보는 시사회가 있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저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영화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힘들 정도였네요. 그리고 제 마음속에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한국교회와 꼭 향유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1월에는 빅퍼즐, 청어람 ARMC 그리고 뉴스앤조이가 함께 영화 시사회를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2018년 한국을 강타한 여러 뉴스 중 가장 많은 기사를 생성했던 건 아마도 난민관련 뉴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반 뉴스 이외에도 가짜뉴스가 많이 생성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난민관련 가짜뉴스의 진원지가 기독교라는 소식에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성경을 통해 사랑과 평화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며 나그네 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모델을 보면서도 환대의 손길을 잘 내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류가 체험한 감정 중 가장 오래되고 강렬한 것은 바로 두려움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모르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강력합니다. 그것을 장르적으로 영화화한 것이 공포영화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난해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을 향한 한국교회의 반응은 마치 공포 영화를 보는 듯한 반응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영화 <가버나움>은 공포영화는 아니지만 두 시간 남짓 상영되는 내내 관객의 마음을 졸이게 합니다. 우리가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난민’의 삶을 거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체험을 제공해 주고 거기에다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게 부모를 고소하는 12살 소년의 저항이 관객에게는 매우 생소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잘 알지 못하는 타자와 낯선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답답함으로 엄습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양파의 껍질이 하나씩 벗겨지듯 영화는 관객을 설득해 나갑니다.

주인공 자인은 출생기록이 없는 소년입니다. 그 이유가 부모의 무관심이든 가난 때문이든 간에 이유를 막론하고 자인은 그런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릅니다. 사실 자신의 여동생 사하르를 노리는 동네 아저씨와 딸을 팔려는 부모에게서 분노를 느낀 자인이 동생을 빼앗긴 뒤 레바논 베이루트 거리로 나와 거리를 헤매며 척박한 삶을 이어 나가면서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난민’의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원래 ‘난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원해서 난민이 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난민이 그런 상황에 내몰리게 된 것이죠. 가출의 상황에 내몰린 소년 자인을 보면서 영화를 보는 관객은 과연 ‘난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영화는 여기에 아동 학대, 조혼, 난민 등 억압받는 어린이들의 참담한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틀대는 원초적인 생명의 힘을 보여줍니다. 왜 감독은 영화의 제목을 <가버나움>이라고 했을까요? 예수님이 살던 당시 인구 1,5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던 가버나움에는 세관이 있었으며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마태복음 8장 5-8절). 예수님 제2의 고향이라고 불릴 만큼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와 안드레가 살았던 곳이며 세리 마태가 부르심을 받은 장소입니다. 가버나움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억은 아마도 예수님이 많은 기적을 행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기도 하셨고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기적과 치유의 은혜를 그렇게 많이 경험하고서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자 예수님은 성읍이 완전히 멸망할 것을 예언하셨죠.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질 것 같으냐? 아니다. 지옥에까지 내려갈 것이다. 네게 베푼 그 엄청난 기적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오늘까지 소돔이 남아 있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이 너보다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다. “하늘과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이것을 지혜롭고 영리한 사람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시니 감사합니다(마태복음 11장 23-25절).“

마태복음 11장은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 가버나움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작은 자로만 취급 당하는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보여주셨다는 말씀도 영화가 주는 울림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지금 레바논을 포함한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아이들과 같이 가장 약한 자들을 난민으로 내몰고 마음을 돌이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비단 레바논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겠지요.

모든 어른이 만든 사회가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도 가버나움처럼 돌이키지 않고 있습니다. 영화를 만든 라딘 라바키 감독은 영화 <가버나움>을 통해서 지속적인 목소리를 통해서만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감상은 모두 조금씩 다르겠지만 영화가 내고 있는 목소리를 소중하게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강도영 소장 (빅퍼즐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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