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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9-03-05 (화) 12:04 조회 : 30

꽃들이 녹아서 만든 길

자주 병이 들면서, 나는 / 죽을 것을 알았다. // 너무 뻔하게 / 사방이 다 여름꽃이다. // 검은 넝쿨장미, 꽃양귀비, / 이름도 비릿한 마거리트, // 너무 뻔하게 / 꽃들이 번지고 있다. // 저렇게 번지다가 / 나는 죽었으리라, 아니 // 흔쾌히 꽃들이 녹아나고 / 너무 뻔하게 // 검은 넝쿨장미, 꽃양귀비, 이름도 비릿한 마거리트. // 꽃들이 녹아서 만든 길을 따라갔으리라.

 - 송기원 <병(病)>

한 주간 내내 몸이 좋질 않았습니다. 속병이 난 모양인데, 대수롭지 않은 병으로도 여간 성가신 게 아닙니다. 첫 날은 꼼짝도 못한 채 화장실을 안방 삼아 지냈고, 차도를 보이던 그 이튿날부터도 속이 나아지질 않아 ‘죽’으로 연명했다지요. ‘주와 함께’가 아니라 ‘죽과 함께’ 보낸 한 주는 기력이 없었습니다. 그러잖아도 부실한 몸, 곁에서 지켜보는 아내가 안쓰러워 하는 통에 그 몸이 더 작아졌다던가요. 몸 아프면 나만 고생인 게 아니어서, 피치 못 할 아픔(病)이 피치 못 할 죄가 되기도 합니다.

병이 들면, “자주 병이 들면” 끝내 ‘죽음’에 생각이 닿을 텐 가요. 그게 꼭 그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병이 들면 않던 생각도 같이 들지요. 건강의 소중함이라든가, 그러니 그간의 건강이 참 고마운 일이더라 하는 좋은 생각이 그 하나일 겁니다. 하지만 병중에 든 저 기특한 생각은 잠깐일 뿐이지요. 더 길고 더 많은 생각은 ‘좋지 않은’쪽에 기대고 있을 겁니다. 이러다 죽겠다거나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엄살 든 생각도 그 하나겠는데, 그게 엄살이 아니고 사실에 가까울 때, 그게 “너무 뻔”할 때도 있습니다.

얼마 전, 독일에 살던 좋은 시인 한 사람이 그 “너무 뻔”한 길을 나섰습니다. 불과 쉰 넷의 나이, 참 아깝고 아까운 사람이었지요. 그녀가 스무 살 갓 넘은 약관의 나이에 처음 낸 시집의 제목이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인데, ‘거름’이 된 ‘슬픔’을 빼곡히 심어 놓은 그녀의 시집에 이런 노래를 남겼어요.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몰골만 겨우 사람 꼴 갖춰 밤 어두운 길에서 만났더라면 지레 도망질이라도 쳤을 터이지만 눈매만은 미친 듯 타오르는 유월 숲 속 같아 내라도 턱하니 피기침 늑막에 차 오르는 물 거두어 주고 싶었네 / 산가시내 되어 독오른 뱀을 잡고 / 백정집 칼잽이 되어 개를 잡아 / 청솔가지 분질러 진국으로만 고아다가 후 후 불며 먹이고 싶었네 저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을 재워 선한 물같이 맛깔 데인 잎차같이 눕히고 싶었네 끝내 일어서게 하고 싶었네 /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 내 할미 어미가 대처에서 돌아온 지친 남정들 머리맡 지킬 때 허벅살 선지피라도 다투어 먹인 것처럼
/ 어디 내 사내뿐이랴” (허수경 ‘폐병쟁이 내 사내’)

죽을병은 아니었으나 병든 한 주간 내내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그 한 주간 동안 아내는 기운 없는 ‘남편’ 생각만 했습니다. 지나치게 염려했고 지나치게 돌보았고 지나치게 품에 안았습니다. 사는 일이란 “여름 꽃”처럼 너무도 ‘뻔한 것’이지만, 죽는 일도 실은 그 여름 ‘꽃들이 번지듯’ 지나치게 ‘뻔한 일’이지요. 내가 “꽃들이 녹아서 만든” 어느 ‘길’을 묵상하는 동안, 아내는 살아서 낼 꽃길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도 저도 ‘뻔한’ 꽃 길, 어느 것이 더 값진 것인지 따져 묻는 건 어리석습니다.

종종 아내와 ‘자랑 배틀’ 장난을 해요. 아내는 자기만큼 착하고 예쁜 아내가 없을 것이라 자랑하고, 나는 나만큼 멋지고 똑똑한 남편이 없을 거라고 자랑을 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자랑’에 대해 ‘자뻑’이라는 전문용어를 써가며 고개를 돌립니다. 느닷없이 제가 물었지요. “여보, 이렇게 자기 자랑만 하다 하나님 앞에 서면,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희들 세상에서 뭐하다 왔느냐’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할까?” 아내는 고개를 들 수 없을 거라고 답했고,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자뻑 하다 왔어요, 하나님.”

‘자랑’ 많은 세상에 살면서 ‘자랑’에 눈코 뜨고 사느라 길이 어지러워요. 인생이란 삶의 날줄과 죽음의 씨줄로 짠 한 벌 옷 같은 것이겠는데, 그 ‘뻔한 일’을 두고 길이 어지럽고 소란스러운 건 다 ‘자기 자랑’ 때문이던가요. 하다하다 ‘믿음’까지 자랑을 해댔든지, 사도는 이렇게 적기도 했지요.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로마서 3장 27절).” 몸이 다 낫지 않았는지 아직 기운이 없습니다. 하루 이틀 더 지나면 기운이 나겠지요. 이든저든 “꽃들이 녹아서 만든 길”에서 멀어지지 말아야겠습니다.


이창순 목사 (서부침례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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