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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9-02-25 (월) 09:41 조회 : 82

부모의 마음

세상에는 많은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관하여 일정한 줄거리를 글뿐 아니라 영상으로도 장르의 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특별한 사람의 업적을 과장하거나 불가능한 사건을 꾸며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삶과 자연의 신비를 풀어나가는 오래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날마다 시간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대량의 정보를 많은 사람에게 정리해 뉴스라는 이름으로 발표하거나 이런저런 입소문을 근거로 흥미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무대에서 연극을 올리기 위해 꾸며진 희곡도 있고, 영상을 위한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시의 형태를 취한 영웅의 긴 서사시도 있고, 역사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에 집중된 이야기, 아예 현실 세계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엉뚱한 판타지를 넘어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동물들을 등장시켜 세상을 비유하는 우화도 있습니다. 이제 세상은 실제냐 허구냐를 따지지 않고 오히려 그 경계를 넘어서 오직 재미에 가치를 두고 존재하는 모두를 현실로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옛적에도 사람들은 재미를 찾아다녔겠지만, 요즘은 더욱 적극적으로 놀 거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더구나 나라와 민족 간의 걸림돌이던 언어의 턱마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낮아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소통이 서로 자유로워지고 여유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더욱 이야기에 목말라하는가 봅니다.

이제 놀 거리와 재미는 구체적인 힘이 되었습니다. 모든 얘깃거리가 다시 평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재미가 돈이 되고, 권력이 되었습니다. 그 힘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여러 가지 형태로 바뀌었지만 결국 왕좌의 게임, 전쟁 이야기입니다. 그 싸움엔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합니다. 감동의 폭을 키우려면 등장인물 간의 힘의 격차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권력의 끝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자리싸움이 그 재미에 정점이 됩니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건 아니건 왕의 자리가 바뀌는 사건이 일어날 때 관객은 긴장하게 됩니다. 작가는 그 반전의 고리를 얼마큼 세련되게 관객에게 제시하는가 하는 것이 또한 관건입니다. 저도 강사로서 강의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합니다. 오늘 프랑크푸르트 제이엠티(Joy Us Mission Training Center)훈련원에서 준비한 제 강의에 느닷없이 효(孝)를 주제로 제시하였습니다.

효는 권력의 싸움에서도 무시 못 하는 쟁점이고 당위성을 내세울 때 사용되는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사용되는 효도를 하나님과 연결시켜 반전을 꾀하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정서에 깔려 있는 ‘효’는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표현은 서로 달랐지만 젊은이들의 대답은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도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공자가 말하기를(公子 曰) ‘자식이 아프지 않을까를 염려하는 부모의 조바심’을 인용하며 강의를 마무리하였습니다. 효란 자식의 마음이 아니라 부모의 마음이라는 공자의 생각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에서 효를 가장 강력하고 중요하게 제시한 사람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대하는 자식의 의무적인 자세가 아니라, 우러나오는 부모의 사랑으로 풀어낸 공자의 대답은 분위기를 바꾸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저도 부모의 마음을 하나님과 연결시킬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왕좌 쟁탈전으로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중에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에게 제안하십니다. “우리 허심 탄회하게 이야기해 보자(이사야 1장 18절).”

세상의 이목은 온통 권력싸움에 모여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우상을 만들지 말라, 내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지키라 하시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하십니다. 결국 주님은 그 명령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있는 나를 향해 오늘도 십자가에서 선언하십니다.

‘다 이루었다.’

진정한 왕이신 주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릅니다. 그래서 주님의 얘기가 점점 더 재미있어집니다. 그 흥미진진한 얘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함철훈 교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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