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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화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8-12-28 (금) 10:58 조회 : 96
길은 공간과 공간, 시간과 시간, ‘나’와 ‘너’를 이어줍니다. 인간은 그렇게 길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곳과 이곳을 만납니다. 길은 단순히 공간 이동을 위한 통로만이 아닙니다. 길은 ‘나’와 ‘너’의 나눔과 문화를 공유하게 합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랬듯이 이 땅의 길을 걸으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동행할 수 있다면 삶의 의미를 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굳이 산티아고가 아니어도 존재의 의미를 더할 수 있다면 그 길을 함께 걸어보면 어떨까요?

차귀놀

제주도의 올레길은 이 땅에 걷기 열풍을 일으켰습
니다. 올레길이 조성된 이후, 그것을 벤치마킹하여 전국에 걷기 위한 길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함께 걷기 열풍 또한 동쪽 끝 울릉도에서 서쪽 끝 대청도와 백령도까지 이어졌습니다. 덕분에 걷는 운동을 위한 길들이 만들어지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할 만큼 전국적으로 지자체의 특성과 역사, 지리, 문화적으로 나름의 근거를 마련하면서 경쟁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와 함께 만들어진 신조어도 등장했습니다. ‘올레꾼’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걷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데, 올레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고, 길의 명칭이 다르더라도 ‘올레꾼’이라는 말로 통칭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제주도의 올레길만 하더라도 21코스까지 다양한 길과 난이도, 그리고 길에 따라서는 그곳에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자연과 문화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길마다, 철마다 다른 느낌과 의미를 찾아서 걷게 됩니다. 걷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의미를 더합니다. 스치는 만남이라고 할지라도 의미와 추억, 그리고 기쁨까지 더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길을 간다는 것은 쉼을 필요로 합니다. 가
는 길 어딘가에는 나그네를 위한 쉼터가 있어야 기쁨을 더하게 합니다.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지 그 길을 통해서 어디까지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걷는 것 자체가 목적일 경우가 많습니다. 몸과 마음의 회복과 치유를 위해서 ‘걷기’ 때문입니다. 단지 다음 공간으로의 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걷는 것’ 그 자체를 목적으로 걷는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걷는 길 어딘가에는 잠시 쉼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제주도 올레길 12코스는 올레길 가운데 가장 아름
다운 길입니다. 그 중에도 낙조가 만들어주는 저녁노을은 아름답기가 그지없습니다. 제주의 낙조가 아름답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라는 의미입니다. 걷다가 마음이 드는 곳 어디든 앉으면 용암이 바다로 향하다 지쳐서 멈춰선 채로 의자가 되어줍니다. 그곳에 걸터앉아 수평선 너머로 이어지는 붉은 노을은 숨이 턱 막히도록 아름답습니다.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수평선 너머로 다음 여정을 준비하는 태양은 자신의 존재감을 장엄하게 느끼도록 합니다. 그 빛깔과 장면은 매일, 매 순간 달라지기에 눈을 돌릴 수조차 없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돌릴 수 없어 선 채로 응시
하고 있노라면 결국 눈물이 흘러내리고야 맙니다. 그런가 하면 빛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엄한 장면은 빛내림입니다. 구름이 낀 날이면 반짝이는 작은 파도 끝에 불이 하나씩 켜지면서 집중적으로 비춰지는 빛내림은 황홀함 그 자체입니다. 바람 따라 움직이는 구름의 모양은 빛내림의 다양한 연출을 주도합니다. 한눈을 팔 수 없도록 변화무쌍한 빛내림의 연출은 순간을 담기 위한 경쟁심마저 느끼게 합니다. 그러한 순간들을 경험하게 하고, 가는 길을 멈추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 올레길 12코스입니다.

그곳에 1년여 전에 쉼터가 생겼습니다. 언제부터
인가 올레길 곳곳에 카페가 난립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생계를 위해서 만들어지는 카페들은 제주도 본래의 모습을 잃게 만드는 요인 중에 하나라고할 만큼 걱정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아쉬움이 있지만 한 편 올레길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이 길을 걸으면서 느꼈던 아쉬움은 쉼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변의 환경과 어울리면서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그리고 주변 분위기와 어울리게 모나지 않고, 튀지 않는 공간이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공간을 마련하고 잠시 쉴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 만들어졌습니다. 나 보란 듯 고개를 들고 있는 건물이 아니라 작은 용수포구 곶안에 지붕조차 높게 이지 않고 마련된 공간은 부담이 없습니다. 올레길 12코스에 있는 <차귀놀>이라고 하는 카페입니다. 24시간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지점에 놀이터를 만들고 스스로 놀장(놀짱)이 된 주인장은 대기업의 브레인 역할을 하던 재원이지만 삶의 의미를 찾아 이곳에 터를 마련하고 사람답게 살고 싶어 커피를 내리고 있답니다.

카페 <차귀놀>은 차귀도를 배경으로 하는 살아있
는 그림 그 자체입니다. 다른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이, 그냥 그림입니다. 그곳 어딘가에 앉는다면 그 화폭에 담긴 주인공이 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움과 함께 잠시 몸을 쉴 수 있도록 하는 주인장의 배려는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합니다. 실내에는 빈티지 오디오(Capitol)가 귀와 마음을 끌고, 벽면으로 이어지는 시선은 심플한 인테리어의 매력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옥상에는 노을과 바다를 바라볼 수 있도록 긴 테이블과 나무 데크를 설치해서 눕든지 앉은 채로 밤하늘과 바다까지 조망할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그곳은 잠시 쉬고 싶은 여유를 허락하는 곳입니다.


이종전 교수 (대한신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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