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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8-12-13 (목) 14:07 조회 : 60

행복한 사람

Ⅰ. 생각해 본다
지난 9월 어느 날 아침, 토스트, 계란프라이, 요거트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남편과 식탁에 마주앉아 별말 없이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습니다. 화면에 뜬 발신인은 시어머님. 일단 전화는 받고나서, 며칠 전 통화 했는데 아침부터 무슨 일이실까 생각하다가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수화기 너머에도 머뭇거림이 느껴지는 순간, 하시는 말씀. “결혼기념일 축하 한다~” “네??” “어머, 니네 몰랐니?” 만 22년 만에 처음으로 완벽히 잊혀 진 기념비적인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아내의 눈길을 피해 빛의 속도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간 남편이 들고 나온 수습책이 있었으니, “영화 보러 가자, <타샤 튜더>!”

11년 전, 딸 서안이가 읽던 『비밀화원』 삽화로 처음 알게 된 타샤는 지금까지도 계절마다 펼쳐 보게 되는 아름다운 책들의 저자이자 주인공입니다. 동경하면서도 감히 따라갈 수 없는 타샤의 자연주의적 삶이었지만 글과 사진만으로도 얼마나 풍요롭고 만족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타샤 라는 사람과 그 인생을 깊이 사랑해서 좋은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소개하고 책 선물도 여러 권 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모습을 담은 다큐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결혼 22주년 기념일 선물로 괜찮았습니다. 귀한 상영관을 찾아 몇 안 되는 관객들 사이에서 이젠 이 세상에 없는 타샤의 목소리를 들으며 행복한 삶과 죽음에 대하여 천천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Ⅱ. 감상해 본다
타샤 튜더(1915-2008, 미국)는 동화작가, 삽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무엇보다 버몬트 주 시골 30만평 대지에 손수 정원을 일궈낸 솜씨 좋은 정원사였습니다. 명망 있는 가문 출신답게 사교계로 진출할 수도 있었고 가족들의 소망도 그러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온 정원을 가꾸고 염소 젖을 짜는 삶으로 나아가는 길에 타샤는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9살 나이에 타샤는 집안 친구 집으로 보내졌는데, 명문가였음에도 보헤미안적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그 가정에서 자유롭고 독특한 문화를 누리며 성장했습니다. 고전을 마음껏 읽고, 1860년대부터 내려온 드레스들을 무대의상 삼아 연극을 하고, 문학과 예술을 놀이삼아 밤늦도록 즐기며 행복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화가인 어머니의 영향도 있었지만 타샤는 어린 시절부터 주변 풍경과 사람들을 스케치하고 채색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결혼을 해서 자녀 넷을 둔 타샤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함께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생활의 모든 짐을 타샤에게 지웠던 남편과 결국 헤어지고, 그림을 생업으로 삼아 아이들을 기르고 집안 일, 정원 일을 묵묵히 감당하며 행복한 삶을 이어갔습니다. 타샤는 늘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불행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이른 나이에 알았다는 점을 감사하며 행복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지금 이 아름다운 정원을 위해 30년을 성실하게 일하며 인내했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직접 보지 않은 것은 그린 적이 없다고 말할 만큼 타샤의 그림은 곧 그녀의 삶이었습니다.

이제 계절이 이울어 타샤의 정원도 잠들 준비를 하고 흰 눈에 덮여 가겠지요. 그림 속 벽난로 앞에서 빨간색 크리스마스 가운을 입고 불을 쪼이는 아이들과 코기 강아지가 사랑스럽습니다. 난로앞쪽엔 크기가 다른 빨간 양말들이 저마다 선물을 기다리며 매달려 있습니다. 놓치지 말고 숨은 그림 찾듯이 보아야 하는 건 바로 타샤의 트레이드마크인 테두리 그림입니다. 빨간 호랑가시나무 열매들과, 푸른 전나무 가지에 달린 열매들, 상수리 나뭇잎과 열매들, 여기에 쌓인 눈송이… 테두리 그림이 집안 풍경을 바깥 풍경과 연결해 줍니다. 올 한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이 시기에 따뜻한 타샤의 그림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Ⅲ. 읽어 본다
남편이 옆자리에서 가끔 하품 하는 걸 목격했기에 영화관을 나오며 물었습니다. 재밌게 봤냐고. (아내인) 내가 재밌게 봤을 것 같다는 우회적인 답변을 들었습니다. 어쨌든 맞는 말이라서 더 이상 궁금해하지는 않기로 하였고, 집으로 오는 동안, 처음 들어본 타샤의 음성이 귓가에 맴돌아 내내 기분이 좋았습니다.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며 삶이 만족스러운지, 잘 살아가고 있는지 천천히 답
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바랄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개들, 염소들, 새들과 여기 사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다.인생을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람들에게 해줄 이야기는 없다. 철학이 있다면,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에 잘 표현되어 있다. ‘자신 있게 꿈을 향해 나아가고 상상해온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이라면, 일상 속에서 예상치 못한 성공을 만날 것이다.’ 그게 내 신조다. 정말 맞는 말이다. 내 삶 전체가 바로 그런 것을.


정호경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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