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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8-11-19 (월) 09:21 조회 : 104
주 없이 살 수 없네

아내가 서점엘 다녀왔더랍니다. 필시 아이들이 졸
라 나선 걸음이었을 겁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 손에 책 한 권씩이 들려 있어요. 조르르 달려가 소파에 앉더니만 성급히 비닐 포장을 뜯고 삼매경에 빠집니다. 누가 보면 독서광인 줄 알겠어요. 그런데, 가만 보니 아내 손에도 책 한 권이 들려 있더군요.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책을 사는 일은 주로 아내가 아니라 제 몫이었거든요. 남편이 사 모아 쌓아 둔 책만으로도 평생 읽어 모자람이 없을 터, 아내는 굳이 책을 살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책을 사 오다니요. 

<당신도 혈압약 없이 살 수 있다> 아내가 사 온 
책의 제목입니다. 혈압이 조금 높아 평소 혈압약을 복용해 왔는데, 그게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약 없이 살 수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 번거로움을 덜 수 있겠지요. 어쩌면 ‘약’이라든가 ‘번거로움’의 문제는 사소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 제목은 ‘이 책’이 혈압을 잡을 수 있다는 말로 들릴 법하니까요. 어쨌거나 아내는 들고 온 책을 펴 읽습니다. 무어라 쓰여 있는지, 도움이 좀 되는 건지 묻지 않았습니다. 제 짐작이 맞는다면, 대개 뻔한 말일 테니까요. 

묻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았지요. 아내의 눈빛은 
차분했습니다. 고른 숨을 쉬며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은 부드러웠습니다. 책 읽는 아내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음식을 하는 아내 모습이라든가, 화장하는 아내 모습의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던가요. 저 아름다운 아내의 남편 된 자로서 한 마디 묻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여보, 혈압약 없이 살 수 있겠어?” 아내는 대답 없이 눈웃음만 보였습니다. 장난기 많은 남편이 정작 묻고 싶은 말을 이어 붙입니다. “여보, 그런데 말이야… 나 없이도 살 수 있겠어?” 이게 웬 뜬금없는 소리랍니까? 혈압약하고 남편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하다 하다 이제 남편은 혈압약까지 질투하는 건가요. 어쨌거나 아내의 대답이 궁금합니다. 환하게 웃는 아내, 주저 없이 대답합니다. “없지~이~. 내가 당신 없이 어떻게 살아~” 평소 아내는 거짓말을 잘 못 해요. 거짓말이 다 뭡니까. 빈말도 잘 못 하는 여자랍니다. 그리하여 남편은 아내의 저 간드러진 대답을 진심 혹은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그 ‘진심-사실’은 적어도 그날 하루 분량만큼의 꽉 찬 행복이 되더랍니다. 장가 하나는 잘 든 모양입니다.

알지요. 사람의 진심이 얼마나 위태로운 건지 말
입니다. 스승이 예고한 ‘배반’을 두고 ‘죽을지언정’을 운운하며 부인했던 제자의 이야기는 성경에서만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제자의 고백은 진심이었을 겁니다. 다만, 진심을 지킬 힘이 제자에게 있지 않았더라는 거, 그걸 제자가 몰랐더라는 게 문제였을 터입니다. 그러니 제아무리 ‘진심’이어도 장담할 일은 못 되지요. 그래서 남편은 다시 물었다던가요. “여보,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어?” 말을 잘 못 알아들은 아내가 대답합니다. “아니, 혈압약 없이도 못 살아.”

<주 없이 살 수 없네>라는 찬송이 있지요. 그 노래 
2절이 이래요. “주 없이 살 수 없네 나 혼자 못 서리. 힘없고 부족하며 지혜도 없도다.” 혈압약 없이는 살아도 남편 없이는 못 산다고 대답해야 옳습니다. 남편 없이는 살아도 주님 없이는 못 산다고 대답해야 옳고, 그 대답은 진심이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진심이 나를 다 지켜 주는 건 아닙니다. 진심을 지킬 힘과 지혜란 내 안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일까요. 요즘 자꾸 그 말씀이 떠올라요.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장 20절).”

아내는 읽던 책을 다 끝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다시 읽을 것인지 읽기를 그만둔 건지, 묻지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아내는 아직 ‘혈압약 없이’ 살지 못합니다. 별 쓸모도 없는 물건이지만, 아내는 남편도 내다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아직 남편 없이 살지 못 합니다(‘아직’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부부는 ‘믿음’을 끝내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이 깊은 고독 속에 내 생명 끝나도” 끝낼 수 없는 일입니다. 아니, 그분이 끝내시지 않을 일입니다. 이래저래, 주 없이 살 수가 없습니다.


이창순 목사 (서부침례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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