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구텐버그

한 편의 뮤지컬을 만드는 일은 창작자들에게는 ‘출산’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이야기가 자식이라면, 작가와 작곡가는 엄마와 아빠가 되어 몇 개월 동안 함께 고군분투 합니다. 서로 완전히 활동 분야가 다른 두 사람이 마음을 맞춰 협업을 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닌 터, 자식이라고 간신히 만들어놓아도 내 새끼가 어디 가서 욕은 안 먹는지, 사람들이 과연 예뻐라 해주는지, 얻어 터지고 들어와서 울고 있지는 않는지 창작자들은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것 마냥 가슴을 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세상 빛을 본 녀석은 행운아입니다. 우리가 지금 상업 광고판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뮤지컬들은 어쨌거나 소위 ‘잘나가는 자식들’입니다. 잘 팔려(?) 잘 살고 있는 셈이니까요. 사실 다른 녀석들은 태어나도 빛도 못보고 우울하게 책장 속에 끼어 있기도 합니다. 부모들 입장에서는 가슴이 아프고 속이 터지지요. 그 소중한 내 새끼를 밖에 내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에 ‘버드’와 ‘더그’라는 두 신인 뮤지컬 작곡가와 작가가 있습니다. 이들은 브로드웨이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활자 인쇄술의 혁명가 구텐버그(구텐베르크)를 소재로 하고 있어 웬만한 제작자들이 고개를 갸웃할만합니다. 활자 인쇄술과 뮤지컬이라고? 이들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여러 프로듀서들을 초대해놓고 자신들이 직접 노래하고 연기하며 작품을 선보입니다. 무대는 간소합니다. 피아노 한 대, 어디선가 빌려온 듯한 사다리와 온갖 등장인물의 이름이 적힌 야구모자 여러 개가 전부입니다. 뮤지컬<구텐버그>에서는 극을 이끌어가는 두 명의 주인공이 한 명의 피아노 연주자와 함께 20여개가 넘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극의 모든 등장인물과 플롯을 책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극의 형식은 ‘리딩 공연’입니다. 리딩은 본 공연에 앞서 관객과 평단,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품의 흥행 가능성을 보고 제작에 나서줄 제작자들에게 먼저 선을 보이는 일종의 워크숍입니다. 실제로 뮤지컬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한 단계가 공연의 소재가 된 것이죠. 극중 극에는 역사 속 위대한 발명가 구텐버그를 양조장에서 와인을 짜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발칙한 상상이 담겨 있습니다. 그를 둘러싸고 까막눈 여자 헬베티카, 수도승들, 구두닦이, 취객1, 2, 이웃집 여자, 푸줏간 주인, 친구 등 깨알 같은 앙상블들도 신속히 등장합니다. 단 두 명의 배우가 이 모두를 연기하는 것이죠.

이렇게 <구텐버그>는 미니멀한 세트와 최소한의 소품만으로 오롯이 배우의 힘에 기대어 극 전체를 이끌어가야 하므로 내공 없는 배우는 소화해내기 힘듭니다. 지난 초연을 성공적으로 지켜냈던 장승조, 정원영에 허규와 김종구의 새로운 바람이 불어와 두번째 시즌의 공연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이들이 연기해 내는 버그와 더그는 눈물겨울수록 많은 사랑을 받는 캐릭터가 될 것입니다.

버그와 더그가 열과 성을 다해 자신들의 작품을 어필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웃기면서도 한편으로 슬픕니다. ‘저렇게 까지 해야 하다니...’ 하는 생각 때문이죠. 하지만 곧 그들이 참 아름답고 멋지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그들은 스타벅스 알바를 하며 4대 보험 가입을 열망하는 근로자이자 양로원에서 노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철저한 생활인임에 틀림없지만, 적어도 빛나는 꿈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뮤지컬 속에서 활자 인쇄기를 발명하려 애쓰는 구텐버그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두 남자의 열정. 이쯤 되면 제발 어떤 멋진 제작자가 나타나서 <구텐버그> 좀 올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만약 본인이 갑부라면 “내가 이 작품, 올려줄게!” 호탕하게 직구를 날려주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한편, 이 세상 어느 부모보다도 ‘내 새끼’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들의 열심에 스스로에게도 작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지금 나도 꿈꾸고 있나?’, ‘나는 항상 첫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내게 주어진 일과 사명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나?’  


INFO

일시 : 2014년 9월 17일(수) – 12월 7일(주일)
         화-금 오후 8시/토요일 오후 3시, 7시/주일 및 공휴일 오후 2시, 6시
장소 : 수현재씨어터 (DCF대명문화공장 3층)
원작 : 앤소니 킹(Anthony King) & 스콧 브라운(Scott Brown)
연출·각색 : 김동연
기획·제작 : 쇼노트, CJ E&M
러닝타임 : 약 100분
티켓 : 전석 55,000원
예매 : 인터파크 ticket.interpark.com, 예스24 ticket.yes24.com
문의 : 02-749-9037


한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