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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8-04-26 (목) 14:34 조회 : 169
세상과 관계 맺기

Ⅰ.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 텅 빈 시골집 방 안에 누워 심심했던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이런 저런 공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하나가 나와 세계의 관계를 어렴풋이 알게 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끝은 어디일까? 나라는 존재를 시작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답은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방바닥과 연결되어 있다. 방바닥은 벽과, 벽은 천정에, 천정은 지붕과, 지붕은 하늘 아래 있으니 안 보이지만 공기가 모든 것을 연결하고 있는 거겠지. 하늘 밖은 별들, 또 알 수 없는 별들이 있는 하늘로 이어진다. 그럼 끝은 없는 것 같은데… 나랑 연결되지 않은 건 없는 거네…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인상이 깊었던지 자라면서 
가끔 되새겨 보는 기억이었습니다. 스무 살이 되어 철학에 대해 읽고 세계관을 고민하면서 그 날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는데, 한 사람으로서 존재론과 인식론에 눈을 떠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음을 깨닫고 흥미로웠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연관이 있다는 생각은 공감능력을 키워 가도록 자연스럽게 나를 이끌어주었습니다. 낮은 데로 흐르는 사랑의 속성은 공동체의 범위를 땅 끝까지 확대해 주었고,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나의 자유 또한 완전하지 못 하다는 깊은 연대의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 하나에도 괴로움을 느꼈듯이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마음 깊이 바라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이렇게 착한 심성으로 대한다면 모든 관계는 아름답고 평화로울 것입니다.

Ⅱ. 감상해 본다
착한 심성을 가진 화가의 그림을 감상해 보겠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박수근(1914-1965)의 작품 ‘귀로’입니다. 그의 화풍은 독특해서 누가 봐도 아, 박수근 그림이네… 할 정도인데, 이는 표면의 질감을 의미하는 그만의 ‘마띠에르’기법 때문입니다. 강원도 양구 출신인 화가는 옛 석불과 석탑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 재료로 사용된 화강암의 질감과 색조를 구현해 내려고 노력했으며 결국 독창적인 평면을 완성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야산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돌인 화강암은 조각이나 암각화의 소재로 사용되었기에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드러내 줍니다. 이 돌을 들여다보며 질감을 관찰하고 연구하여 작품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 화가의 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미석(아름다운 돌)’이라는 그의 아호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의 그림 속 소박한 서민들의 모습은 돌이 지닌 물성과 지극히 잘 어울려서 보는 이와 그림 사이의 간격을 뛰어넘는 친숙함을 느끼게 합니다.

한국 근대사의 고난 속에 나고 자란 화가는 일제 
강점기와 민족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어야 했습니다. 가족과의 헤어짐과 극적인 만남, 전쟁 속에 폐허가 된 서울 창신동에서의 가난한 삶은 동시대를 발버둥치며 구르는 돌처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와 하나 되어 작품 속에 기록됩니다. 그의 그림은 사실적이지만 가난과 고통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런 현실을 하루하루 담담하게 살아내는 서민의 일상을 정답게 담아냅니다. 거친 세상을 소박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하여 그가 품었던 애정은 이제 그의 작품에 대한 현대인들의 사랑과 인정으로 많은 부분 보상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그림이 가장 비싼 가격의 대열에 올랐다는 것, 위작 논란이 일만큼 유명하다는 것도 그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단순한 그림 이상의 가치를 지닌 빛나는 문화유산으로 한국인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그렇습니다.

말년의 작품인 ‘귀로’는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가
는 여인네들과 아이들을 길가의 나무와 조화롭게 담아 낸 정감어린 풍경화입니다. 잎을 떨군 가지를 하늘로 향하고 있는 커다란 나무들은 앙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늘을 꽃 피운 듯 풍요롭고 든든해서 사람들의 보호자인 듯도 하고 다정한 동무인 듯도 합니다. 나무는 무심히 그 자리에 있고 사람들은 제 갈 길로 가지만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아서 분리될 수 없는 꼭 필요한 존재처럼 소중해 보입니다.

Ⅲ. 읽어 본다
박수근이 아내를 만나 결혼한 절절한 사연과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가족을 사랑하고 그림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던 구체적인 인생사를 몇 문장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알면 알수록 이렇게 진실하고 선한 사람이 있을까 감동하고, 그의 그림을 통해서는 시대를 공감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 시대를 해석하고 살아가는 지혜를 얻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주 만물
을 지으신 분의 무한한 사랑을 제한된 지식과 지혜로나마 헤아려 봅니다. 이와 같은 만물의 연관성을 직관적으로 알았던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자신들을 침략하여 정복하려는 문명인들에게 자연과 하나 되어 순하고 지혜롭고 영적이며 고상한 삶을 사는 법을 가르쳐 준 북아메리카 원주민들. 그들의 공통된 세계관을 알 수 있는 글입니다. 자신들이 도착한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백인들로부터 원주민들은 ‘인디언’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살던 땅에서 쫓겨나 강제로 흩어지고 소멸되어 갔지만, 그 영혼은 지금도 살아 있어서 아름다운 울림과 온기를 전해줍니다.

나는 땅 끝까지 가 보았네
물이 있는 곳 끝까지도 가 보았네
나는 하늘 끝까지 가 보았네
산 끝까지도 가 보았네
나와 연결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네
- 나바호 족 노래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별을 흔들지 않고서는 꽃을 꺾을 수 없다.”

*위의 글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류시화)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정호경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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