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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대한 반성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곳에 가보면 틀림없이 베란다에
그녀의 신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시멘트 바닥이든 시커먼 물이든
왜 사람들은 뛰어들기 전에
자신이 신었던 것을 가지런하게 놓고 갈까?
댓돌 위에 신발을 짝 맞게 정돈하고 방에 들어가,
임산부도 아이 낳으러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뛰어내린 곳에 있는 신발은
생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것은 영원히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다만 그 방향 이쪽에 그녀가 기른 열대어들이
수족관에서 물거품을 뻐끔거리듯
한 번의 삶이 있을 따름이다
돌아보라, 얼마나 많은 잘못 든 길들이 있었는가
가서는 안 되었던 곳,
가고 싶었지만 끝내 들지 못했던 곳들;
말을 듣지 않는, 혼자 사는 애인 집 앞에서 서성이다
침침한 밤길을 돌아오던 날들처럼
헛된 것만을 밟은 신발을 벗고
돌아보면, 생을 ‘쇼부’ 칠 수 있는 기회는 꼭 이번만은 아니다
황지우 <신 벗고 들어가는 그곳>
하루, 신을 몇 번 쯤 벗으며 살까요. 신고 벗기를 수시로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한 번 신으면 웬만해선 벗을 일 없는 이도 있겠지요. 어떻든 한 가지는 틀림없을 겁니다. 누구든 하루 한 번은 신을 벗는다는 것. 그렇다면 사람들은 신을 벗을 때 무슨 생각을 할까요? 아니, 무슨 생각을 하며 신을 벗을까요? 그 하루 한 번의 ‘신 벗음’조차 아무런 생각을 갖지 않을 겁니다. 신을 ‘벗는 것’이 신을 벗고 어디론가 ‘들어가는 것’을 목적하기 때문이겠지요. 그게 몸에 밴 까닭일까요. 그야말로 그게 “버릇”이 된 때문일까요. 스스로의 죽음 앞에서 신을 벗는 이유가 말입니다.
벗어놓은 신발의 가지런한 방향에서 “어떤 방향을” 가리킴을 봅니다. “생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그 방향성은, 이 삶을 끝내놓고 다른 삶으로 들어가려는 어떤 입례의식 같은 것일까요. 신고 가지 않고 굳이 벗어 놓고 가는 그 길/방향이란, “그 방향 이쪽에”서 “물거품을 뻐끔거리듯” 살아온 날들에 대한 반성이 있었던 것일까요. 반성이 아니라 회한일까요. 회한이 아니라 서러움이라거나 억울함일까요. “돌아보라,” 목청 큰 울림으로 들려 “돌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쉼표(,)를 찍습니다. 보이는 것들이 있더군요. 하, 웬 발자국이 저리 지저분하답니까.
“얼마나 많은 잘못된 길들이 있었는가” 하나 둘 셋넷 손가락으로 다 헤아릴 수 있는 일이 아니거니와, 그 중 눈에 띄는 ‘길들’이 있습니다. “가서는 안 되었던 곳,” 아, 그 자리를 돌아보고서도 잠시 쉼표(,). “가고 싶었지만 끝내 들지 못했던 곳들”을 헤아리며는 세미콜론(;)-아, 그건 아직 끝나지 않은 문장이며 끝내고 싶지 않은 삶의 문장이었던 가봅니다(‘세미콜론’은 문장 끝나야 할 자리에서 문장을 끝내고 싶지 않을 때 달아두는 부호가 아니던가요). 어쨌거나 이든 저든 “침침한 밤길을 돌아오던 날들처럼 / 헛된 것만을 밟은 신발을 벗”어 두고 다시 “돌아” 봅니다.
하루에 한 번뿐만은 아닐 신발 벗기, 그 동작의 반복에 끊임이 없음에도 그 때는 왜 그게 잘 보이지 않는 건지. 왜 꼭 신발 가지런히 벗어두고 다른 마음먹어야 그게 보이는 건지. 대체 어떤 가짐으로 살아야 댓돌에 신발 올려놓는 일상으로도 그걸 보고 살 수 있는 건지…. 주일마다 <사울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셋이더군요. 요나단, 사울, 다윗. 각각의 길이 있고, 각각의 결국이 있겠지요. ‘그 길이 부럽다’는 소극적 바람은 부끄럽고 ‘왜 그 길 이었느냐’는 손가락질도 염치없습니다. 그래도, 그게 소용없는 반성만은 아닐 겁니다, 틀림없이.
이창순 목사 (서부침례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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