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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7-12-18 (월) 15:19 조회 : 237

자기만의 문화

Ⅰ. 생각해 본다
요즘 청명하고 선선한 날씨 덕에 호사를 누립니다. 이 좋은 계절은 금방 지나고 11월부터 겨울 냄새가 풍겨 올 생각을 하면 벌써 아쉽기만 합니다. 늦기 전에 누릴 만한 풍요를 누려야겠습니다. 지난 여름 놓친 전시들을 보상해 줄 만한 기획전이 있는지 찾아봅니다. 함께 할 사람들을 꼽아봅니다. 기분 좋은 산책길이 있는 숲을 물색해 봅니다.

얘기하며 걸어도 편안한 친구를 떠올려 봅니다. 장인들이 숨어있는 작은 골목 소박한 빵집 리스트를 점검해 봅니다. 여기는 꼭 우리 딸과 가야 합니다. 가이드 역할을 재미있게 해 주기 때문이지요.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네이버 서재에 찜해둔 책 목록을 살펴보는 일입니다. 읽고 싶은 책을 장바구니로 옮기기 전에 내용과 목차를 다시 훑어봅니다. 선택 기준은 꼭 지금 읽고 싶어야 한다는 것.

이 시대에는 친절하게도 대중을 위해 계절마다 준비된 문화와 유행이 있으니 그것은 누가 결정하는 걸까 궁금해집니다. 누리기 위해서는 소비할 돈과 시간 확보 경쟁이 필수입니다. 이 길에 합류하기보다는 편안하게 추구할 수 있고, 개별적인 정서와 취향에 맞는 자기만의 문화를 만들고 지키고 즐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몇 가지 적어 본 문화생활 중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은 책을 읽는 일입니다. 혼자서도 읽고, 모여서도 읽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읽어주기도, 읽어주는 것을 듣기도 합니다. 소설가 은희경의 낭독회에 가본 적이 있는데, 작가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문장들은 정말 특별합니다. 풍성하기로는 함께 읽는 것이 제일입니다. 책은 솜씨 좋은 중매인이어서 제각기 다른 사람들을 연결하고 생각과 마음을 나누게 합니다. 혼자 읽은 책과는 차원이 다른 기억과 울림이 있습니다.

책 읽는 소녀나 서양 여인들을 모델로 한 그림은 많지만, 최근에 인상적인 그림을 만났습니다. 월북작가로 알려진 이쾌대(경북 칠곡, 1913-1965)의 <책을 보는 두 여인>입니다. 이쾌대는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의 격동기를 고스란히 겪은 화가입니다. 부유한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휘문고보 시절 등단하여 일본 동경제국미술학교에서 유학을 합니다. 해방기 우리 민족의 현실과 해방 이후 새로운 국가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고민은 그의 서사적인 대작들로 표현됩니다. 좌우 이념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월북을 택한 이쾌대는 한국 사회에서 잊혀졌다가 1988년 해금 조치로 세상에 알려집니다. 남한에서 남편의 작품을 필사적으로 지키며 그를 기다렸던 아내 유갑봉은 해금 이후 이쾌대를 재조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전시회는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일을 하다 잠시 쉬는 중인지 걷어 올린 한복 소매, 건강한 피부색과 강인한 팔, 책으로 집중한 저 시선과 진지한 표정이 아름답습니다. 연령차는 조금 있어 보이지만 친근해 보이는 두 사람. 궁금한 것, 새로운 것에 대하여 무언가를 설명하는지 책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진취적입니다.

Ⅲ. 읽어 본다
요즘 교회 소모임에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세 여인이 둘러 앉아,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돌아가며 낭독하고 중간 중간 쉬어가며 이야기를 합니다. 공감하는 내용, 질문들, 느낀 점들을 나누는데, 우리 인생의 문제들이 비슷해서인지 그날 설교와 연관되는 내용도 꼭 발견이 됩니다. 속도는 느리지만 놓치는 글자 없이 소리로 확인하며 읽는 맛이 중독성 있다는 점 알려 드립니다. 루게릭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모리 교수님은 경험에서 얻은 삶의 지혜(어쩌면 죽음의 지혜)를 이 책의 저자이자 자신의 제자인 미치 앨봄에게 가르쳐 줍니다. 여러 교훈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 모리가 ‘자신만의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갔는지 읽어 봅니다.

그는 자신이 말한 대로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했다. 병이 나기 훨씬 오래 전부터 말이다. 즉, 그는 여러 개의 토론 그룹을 운영했고 친구들과 산책을 했으며 하버드 스퀘어 교회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또 그는 가난한 사람들도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그린 하우스’ 라는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그리고 강의를 위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으려고 책을 읽었고 동료들을 방문했으며 졸업생들과 계속해서 연락을 취했고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에게는 편지를 썼다. 그는 맛있는 것을 먹고 자연을 감상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대신에 텔레비전 시트콤이나 ‘주말의 명화’ 따위를 보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대화와 교류, 애정과 같은 실을 잣는 사람이었다. 그런 활동들이 그의 삶에는 철철 넘쳐 흘렀다.


정호경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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