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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병동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7-11-10 (금) 08:46 조회 : 242
꽃으로 피지 않고 뿌리로 단단히 서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이역만리의 먼 독일 땅에 발
을 내딛은 한국인들이 있었습니다.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로 불리었던 이들은 언어도, 생활 풍습도 다른 그 땅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치열하게 삶을 개척해왔습니다. 그 당시에 파독 근로자들은 외화를 벌어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애국자라거나, 가족을 위해 희생한 불쌍한 청춘들로 인식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물론 현재 우리의 기억 속에서 그런 프레임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요. 마치 영화 ‘국제시장’에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열심히 돈을 벌어 한국에 남겨진 가족에게 돈을 보내며 모든 외로움과 설움을 견뎠던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의 이미지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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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따르면 1966년부터 76년까지 약 1만 명 이상
의 간호 인력이 독일에 파견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국내로 송금한 금액은 1천만 마르크 이상으로, 경제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그들이 개방과 발전의 최전선에 서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 때 그곳에는 미지의 세계, 유럽으로 나가 삶을 개척한 모험가들, 젊은이들로 가득 했으니까요.

“간호 여성들 가운데 40%의 여성만이 경제적인 이
유로 이주를 선택했다고 답해요. 60%의 여성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거죠.” 연극 <병동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그 나머지 60%의 여성들의 삶을 재조명합니다. 1970년대 근대화의 상징이자 꽃처럼 여겨졌던 ‘파독 간호사’를 둘러싼 편견과 잘못된 이미지를 버리고, 그들 개개인의 목소리에 집중합니다.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독립적인 존재로서 자유와 권리를 찾고자 고향을 떠난 신여성들은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을 산산조각 냅니다. 독일 땅에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끄집어 내면서 말이죠.

“마치 우리가 시체를 닦는 ‘끔찍한 일’을 했다거나, 
대소변을 받아내는 ‘더러운 일’을 한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더라고요. 하지만 환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듬어 주고, 죽음을 마무리하는 일이 과연 끔찍하고 더러운 일이었을까요? 그러한 관점으로 ‘간호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들의 젊은 시절과 그 시절을 바쳐서 돌보아야 했던 환자들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요?” 

그때 그곳에는 ‘파독 간호사’가 아니라, 다양한 여성
들이 있었습니다. 독일 간병 시스템에 적응하던 와중 다른 간호사들의 아침식사까지 준비하다 울컥함에 그릇을 몽땅 깨버린 여성. 1973년에 있었던 국제 기름 파동으로 독일에서 이주 여성들의 체류 허가를 중단하자 ‘노동력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며 간호복의 한쪽 팔 부분을 잘라버린 여성. 대학 진학을 위해 시간을 쪼개어 공부하며, 연애도, 사랑도 자유롭게 하고 싶어했던 여성. 이들은 애국심에 불타거나, 세상을 바꾸는 영웅이 되거나 하진 않았지만, 자기 자신의 삶을 누구보다도 주체적으로 살았습니다. 당시 한국 땅에서는 시도도, 용인도 되지 않았던 일을 한발 앞서서 했던, 오늘날 흔히 말하는 ‘걸 크러쉬’의 뿌리였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보내진 것이 아니다. 스스로 삶을 선택해서 
떠난 것이다. 따라서 ‘파(派)독’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우리는 재(在)독 간호사다.” 이 작품은 동아 연극상, 대산 문학상, 서울 연극제 희곡상 등을 수상한 차세대 연출가 김재엽의 [세계 시민 이주민 그리고 난민 - 베를린 코멘터리]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김 연출은 ‘간호사’를 의미하는 독일어(Krankenschwester) 단어를 ‘병동 소녀’로 재치있게 의역하며 ‘독일로 떠난 간호사들은 왜 고국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지 않았는가?’라는 궁금증에서 집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예수정, 전국향, 이영숙, 홍성경 등 관록으로 채워진 배우들의 깊은 연기를 함께 볼 수 있어 더욱 기대를 모읍니다. 소재에 초점을 맞추면 여성들의, 여성들에 의한, 여성을 위한 작품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어쩌면 모든 편견과 갑갑한 틀에 맞섰던 모든 개척가들을 위한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응원처럼 말이죠.


INFO

일시 : 2017.11.07.(화) ~ 2017.12.03.(주일) 화-금 8시 / 토 2시 ,6시 / 주일 3시
장소 :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연출 : 김재엽
출연 : 예수정, 전국향, 이영숙, 홍성경, 정원조, 이소영, 윤안나, 김원정, 필립 빈디쉬만 외
티켓 : 정면석 5만 5천 원 / 측면석 3만 원 / 3층석 1만 5천 원
기획·제작 : 예술의전당
문의 : 예술의전당 02-580-1524


한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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