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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아웃
2017년 5월 한국을 강타한 공포 영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겟 아웃>이라는 영화인데요. 영화의 배급사인 UIP는 원래 <겟 아웃>을 한국에서 배급할 계획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등장하는 배우나 연출한 감독까지 한국에서는 홍보할 만한 내용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투브 사이트를 통해 공개된 영화의 예고편을 본 한국 관객들은 영화가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며 영화사에 문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된 문의에 급기야 배급사는 기존 계획을 수정해 영화를 한국에서 배급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최근 들어 회사의 배급 계획까지 관객들이 직접 바꾸는 사례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한국 관객들의 적극적인 영화 관람의지가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겟 아웃>은 어떻게 이런 큰 성공을 한국시장에서 거둘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과거 유사한 테마를 가졌던 공포 장르의 영화와는 현격하게 달랐던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영화를 연출한 조던 필 감독은 이미 미국에서 스탠드 업 코미디로 유명한 겟 아웃 코미디언이었습니다.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인종 차별에 대한 문제를 직면하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완전히 백인도 흑인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차이와 차별이라는 실존적인 문제에 부딪히며 살았던 그는 성인이 된 후에도 이 문제가 사라지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코미디언이라는 전문적인 직업을 갖게 된 후 인종차별은 그에게 단골 소재가 되었고 지금은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자리매김 하였습니다.
영화 <겟 아웃>의 내용은 평소 그가 하던 인종차별 코미디의 뻔하지만 흥미로운 확장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흑인 남자가 백인 여자친구 집에 초대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요.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친구라는 세팅은 이미 우리의 머릿속에 특정 패턴의 이야기를 그리기 마련입니다. 그건 바로 우리 속에 흔히 말하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던 필 감독은 그 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데요. 영화의 외피는 일반적인 공포 영화의 화법을 두르고 있지만 그 안을 잘 들여다보면 미국 사회 안에서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선입견들을 역이용해서 생각의 허점을 찌르고 있습니다. 극장에서 관객들이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아! 나도 선입견에 빠져 있었구나!”라며 내뱉는 외마디 탄식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니까요.
감독은 영화를 통해 포스트 인종차별의 시대(postracial world)를 그리고 있습니다. 포스트 인종차별의 시대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8년 임기가 끝난 이후의 미국을 상징합니다. 사실 미국 사회에서 인종과 관련한 가장 큰 선입견은 바로 흑인은 스포츠와 배우 이외에 다른 분야에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적 편견을 딛고 일어나 버락 오바마는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라간 것이죠. 그가 미국의 수장으로 있는 8년이란 시간은 흑인들에게 치유의 시간이자 변화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흑인 어린이들이 더 큰 꿈을 품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뼈저리게 경험하던 인종차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그들을 괴롭혀 오던 인종차별의 망령은 쉬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차별은 일종의 버전 2.0 같은 모습으로 진화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퇴임 이후 표면적으로는 노골적인 흑인에 관한 차별은 어떤 모양이라도 사람들의 질타를 받았지만 내면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던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인종 차별의 옷은 예전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양으로 변화했습니다.
영화의 다양한 장면들을 통해서 그런 의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에 나오는 백인들이 끊임없이 주인공인 흑인남자에게 자신이 흑인을 좋아한다는 식의 언급을 합니다. 흑인은 대단하고, 멋있고 오바마 대통령이 한 번 더 대통령으로 나왔더라도 오바마에게 투표했을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들이죠. 이런 말들은 마치 겉으로는 자신이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 아주 호의적이고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인 것처럼 말하지만 흑인을 그자리에 함께 있는 다른 백인들처럼 대하지 않고 특별‘대우’를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여기서 말하는 ‘특별’ 대우라 함은 나와 네가 같음을 의미하는 포용이 아니라 너와 나의 다름을 배제의 방식으로 구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차이는 존재합니다. 존재하는 차이 중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인종과 같은 것이죠. 그 차이를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고 대할 것인지는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입니다. 우리 안에 편견을 유지한 체 차이를 대하면 그것은 차별하게 되지만 편견을 극복하고 차이를 수용하면 포용을 만들어 냅니다. 이 글을 읽는 어느 누구라도 적극적으로 차별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편견을 극복해내려는 의지가 없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편견이라는 박스 안에 갇혀서 자기도 모르게 차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먼저 편견이라는 박스에서 나와야(겟 아웃) 합니다. 어떻게 겟 아웃 해야하는지는 아마 사람들마다 다른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가야 하는 편견이라는 박스가 존재함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겟 아웃 하도록 노력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강도영 기획자 (빅퍼즐 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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