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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으려는 자와 펼치려는 자
“덮어 둬.”
어떤 사실을 은폐하려고 할 때, 진실을 가리려 할 때 사람들이 흔히 쓰는 표현입니다. 사소한 잘못을 슬쩍 넘기거나 덮으면 때로는 그 대가를 호되게 치를 때가 있습니다. 진실이 덮여있는 사회는 성장이 더뎌질 수밖에 없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발전해나가지 못하고 역행하거나 퇴보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덮지 말고, 펼쳐야 합니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1517년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는 면죄부를 파는 등 심각한 부패에 빠져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신학자 루터는 95개 반박문을 내걸어 이러한 행태를 비판했고 결국 가톨릭교회와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교회가 인간의 죄를 면하거나 구원할 수 없으며,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써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종교개혁을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은 이러한 몇몇 역사적인 인물들에 의해서만 촉발된 것이 아닙니다. 이미 백여 년 전, 목숨을 걸고 성경을 전하기 위해 화형대의 등불이 되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당시 종교 기득권자들에 의해 ‘독버섯’ 혹은 ‘중얼거리는 자들’이라며 경멸받았던 평범한 사람들, ‘롤라드(Lollard)’들입니다.
당시 가톨릭 교회는 성경을 라틴어로만 읽게 했습니다. 하지만 롤라드들은 가톨릭 교회와의 오랜 전통을 끊어버렸습니다. ‘그 책’(THE BOOK)이라고 불리는 번역된 ‘성경’으로 곳곳을 돌면서 설교했으며, 부패한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롤라드 부흥운동은 기성교회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회의 부패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며, 성경만이 모든 교리와 실천을 위한 궁극적인 권위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지닌 자들과 전하는 자들을 무참히 화형시켰던 신앙의 암흑기에, 롤라드들은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성경 66권의 이름을 취한 후 성경을 모조리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성경을 외쳤고 시민들은 그것을 받아 적어 퍼뜨리게 됩니다. 그렇게 그들의 삶 스스로를 성경이 되게 했습니다. 결국 엄청난 폭압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복음이 유럽 대륙으로의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신학자 에라스무스는 이를 두고 ‘정복되었으나 소멸되지 않는’ 부흥운동이라 말했습니다.
‘THE BOOK(성경)’을 덮으려는 타락한 카톨릭 교회의 세력과, 생명을 걸고 번역된 ‘THE BOOK(성경)’을 펼치려는 롤라드들의 실화를 무대로 옮긴 창작 뮤지컬 <더북>’은 2013년 초연에는 객석점유율을 120%까지 기록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올해에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1월부터 1년간 장기공연 중에 있습니다. 소극장 공연이지만, 실화가 주는 생생함을 바탕으로 비장함과 웅장함을 놓치지 않습니다. 신념을 위해 목숨까지 던지는 사람들의 생생한 삶을 들여다보면, 가슴 속에 큰 울림을 줍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그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편,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덮으려는 자들과 억눌린 자들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숨겨진 진실을 펼쳐 보이려는 자들의 대립은,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과 일상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는 덮으려는 자들일까요, 펼치려는 자들일까요? 진리와 진실은 아무리 덮으려고 해도 펼쳐지기 마련입니다. 정의를 위해서 용기를 내는 사람들에 의해서 말입니다.
INFO
일시 : 2017년 1월 2일 - 2017년 12월 30일
월-금 오후 8시 / 토, 공휴일 오후 3시, 7시 (주일 공연없음)
장소 : 대학로 열린극장
예매 및 안내 : musicalthebook.modoo.at
문의 : 문화행동아트리 010-2648-8255
한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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