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키다리 아저씨께
어릴 때 읽던 세계 명작소설 전집에서 본 삽화 중 한장면이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한 소녀가 한껏 기대하는 표정으로 편지를 열어 보는데 한켠에 반쯤 열린 문으로 아주 긴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장면입니다. 유독 키가 크고 다리가 길게 그려져서 저 그림자를 가진 사람은 대체 누굴까, 더욱 궁금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바로, 1912년 첫 발간 이후 전 세계에서 사랑 받고 있는 진 웹스터(Jean Webster)의 명작소설 <키다리 아저씨>의 한 장면입니다.
배경은 20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의 뉴잉글랜드. ‘존 그리어 홈 고아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 제루샤는 고아원 밖의 넓은 세상을 꿈꿉니다. 풍부한 감수성과 긍정적인 성격으로 작가를 꿈꾸는 그녀에게, 어느 날 수수께끼의 한 남자가 나타나 대학 공부를 후원해 주겠다고 나섭니다. 다음과 같은 조건을 내걸면서 말이죠. 첫째, 자신의 정체를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둘째, 한 달에 한 번 그에게 편지를 보내야 한다는 것. 제루샤는 정체불명의 후원자에게 ‘키다리 아저씨’ 라는 별명을 붙이고 매달 편지를 보내며 점차 성장해 나가게 됩니다.
좌충우돌 대학 생활을 하던 제루샤는 룸메이트인 줄리아의 삼촌, 제르비스를 만나게 되고, 둘은 문학과 여행, 그리고 모험의 세계를 이야기하며 급격히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이름도 모르는 후원자 키다리 아저씨와 새로운 인연인 제르비스. 둘 사이에서 제루샤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비밀이 남아 있습니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는 원작 소설이 지닌 친숙함에 ‘혼성 2인극’이라는 흥미로운 구성, 소설 속에서 갓 튀어나온 것 같은 배우들의 열연으로 지난 해 국내 초연에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로 토니어워즈 연출상을 수상한 존 캐어드의 섬세한 연출과, 이 작품으로 작곡/작사상을 수상한
폴 고든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다른 작품들처럼 세트와 의상의 변화가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두 명의 인물이 편지를 매개체로 웃고, 울고, 성장하고 사랑하는 과정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 소극장 공간이 주는 따뜻함과 잘 어울린다는 평입니다. 주제적으로는 자극적이고 음울한 요즘 뮤지컬의 트랜드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순수한 아날로그의 감동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고아원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첫발을 내딛는 제루샤 역에는 초연 배우였던 유리아와 더불어 임혜영, 강지혜가 새롭게 캐스팅 되었습니다. 제루샤의 친구가 되어주는 제르비스 역에는 작년에 이어 신성록, 송원근, 강동호가 함께합니다. 단 두 명의 배우가 가진 힘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극인만큼, 제루샤들과 제르비스들은 편지와 독백을 넘나드며 섬세한 감정의 변화를 표현해냅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성장하는 제루샤, 제루샤의 성장과 더불어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워나가는 제르비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무대를 꽉 채웁니다.
“행복이란 현재를 살기 지금 이 순간 지금 살아있는 이 순간을 느끼면서 살기 그 행복의 비밀이 뭔지 나 이제는 분명히 알아 내 행복은 내 곁에 있어”
제루샤의 노래처럼 늘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참 행복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키다리 아저씨겠죠. 우리도 누군가의 옆에 있어준다면, 그래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면 멋진 키다리 아저씨가 될 수 있을 겁니다.
INFO
일시 : 2017년 5월 16일(화) - 7월 23일(주일)
화-금 8시 / 주말 및 공휴일 3시, 7시
장소 : DCF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극본 : 존 캐어드 (John Caird)
음악 : 폴 고든 (Paul Gordon)
연출 : 박소영
러닝타임 : 135분(인터미션 15분)
티켓 : R석 6만 6천 원 / S석 4만 4천 원
예매 : 인터파크 1544-1555 예스24 1544-6399
한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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