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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사랑의 넓이와 길이
Ⅰ. 생각해 본다
요즘 가까운 동네 엄마들과 일주일에 한 번 독서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아닌 곳에서 모임을 가져보는 일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아이들을 홈스쿨링 하느라 시간이 여유롭지 못했던 이유도 있지만,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만 너무 익숙해진 탓도 있습니다. 생각으로는 세상을 품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공감하고 사랑하는 삶을 추구했지만 실상은 늘 집과 교회를 통해 이루어진 관계를 맴돌았습니다.
요즘 새로운 경험을 합니다. 사십여 년 다른 인생을 살아온 여자들이 의견을 모아 한 권의 책을 선택합니다. 간식과 마실 것을 챙겨서 도서관 세미나실에 모입니다. 소리 내어 읽는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돌아가면서 낭독을 하는 거지요. 소설도 읽고, 역사도 읽습니다. 읽고 나서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주제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눌 때면 자연스럽게 각자의 세계관이 드러납니다. 사람으로, 여자로, 엄마로 존재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서로를 통해 비춰집니다.
지난 모임에서는 유시민의 『나의 한국 현대사』 중 한 부분을 읽으며 부모세대와의 이념적인 갈등과 대립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분들이 젊은 시절 열정을 바쳐 통과해 오신 독하고 험난한 시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정치 성향으로만 판단할 일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정서적인 공감과 지속적인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Ⅱ. 감상해 본다
신앙도 세대 간의 갈등을 피해 갈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진리는 언제나 변함이 없지만 사람들은 변화무쌍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신앙을 지키고 진리를 변호하려는 노력이 자신을 지키고 변호하는 일이 될 때도 있습니다. 타인과 다른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신앙은 확장되기도 이어지기도 어렵습니다.
많은 비평가들은 고흐의 <성경이 있는 정물>을 아버지를 향한 비난으로 해석했습니다. 펼쳐진 성경 앞에 놓인 근대 소설(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이 고흐와 아버지의 신앙적 갈등을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캐슬린 에릭슨이라는 비평가는 이 그림을 ‘고흐의 과거인 기독교 전통과 현재적 관심사인 근대문학의 화해’로 평가합니다. 소설로 성경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앞에 놓아 성경을 보완해주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며, 두 책을 함께 읽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알리려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고흐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설득할 수 없었지만 이 그림을 그린 의도는 성경을 근대 사회의 삶에 적용 가능하게 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고 에릭슨은 추측합니다.
Ⅲ. 읽어 본다
고흐는 아버지의 정통파적 관습을 거부했고, 초창기에 자신이 전도사로 일하며 가졌던 믿음, 즉 성경만 읽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에서도 벗어나게 됩니다. 그는 성경을 귀중하게 여기고 계속 읽으면서 당대의 문학작품을 읽는 일도 가치 있게 생각했습니다. 시대를 이해하고 성경을 바로 적용하기 위한 노력을 고흐의 그림에서뿐 아니라 열정적인 독서에서도 배웁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한 단락을 소개합니다.
성경은 여러 편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넘어가지. 예를 들면 모세와 노아가 나오는 곳은 예수와 바울이 나오는 곳과는 다르잖니. 그러면 미슐레와 스토우는 어떨까. 그들은 복음이 이제 쓸모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 시대, 우리의 삶에, 너와 나의 삶에 복음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복음에서 속삭이는 소리로 조금씩 알려주는 것들을, 미슐레는 큰 소리로 풍부하게 이야기해준다.
성경을 읽고, 시대를 읽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 하나님 사랑의 넓이와 길이를 경험하고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하고 바른 길인 것 같습니다.
정호경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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