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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간 영화를 음미하다 "프란시스 하"
혹시 <프란시스 하>라는 영화를 들어보셨나요? 2014년 7월에 개봉한 이 영화는 많은 관객을 만날 기회를 얻지 못했고, 약 60개 정도의 스크린에서 7만여 명의 관객과 소통한 후 아쉽게 극장에서 내려 왔습니다. 소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술 영화는 많은 극장에서 개봉할 수 없기 때문에 좋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프란시스 하>는 비록 많은 관객들이 보지는 못했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공감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점들이 참 많은 영화여서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영화는 27세의 여성 프란시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동네 중 하나인 뉴욕에서 사는 가난한 무용수예요. 그것도 정식 단원이 아닌 견습생으로 말이죠. 대학 시절 절친이었던 소피와 함께 살던 프란시스는 어느 날 갑자기 소피가 부자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집에서 강제로 쫓겨나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면서 친구 집에 세들어 살기도 하고, 독립했던 부모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하고, 결국 집이 없어 대학교 기숙사 조교로 들어가 살기도 합니다. 사실 프란시스가 이렇게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제대로 된 직업이 없기 때문이에요. 무용수로서의 꿈을 꾸며 자기 나름대로의 계획을 따라 살아가고 싶지만 세상은 그녀에게 다른 직업을 찾아보라고만 합니다. 만약 그녀가 꿈을 이루는 것이 그녀의 집(home)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면 그녀는 영화 내내 집에서 쫓겨나서 옮겨 다녀야 하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죠.
이렇게 우울한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톡톡 튀면서 2%씩 모자라는 상황들을 항상 100%로 만들어내는 프란시스는 그녀 앞에 던져진 어려운 인생의 과제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해가려고 힘을 냅니다. 하지만 세상은 끝까지 그녀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27살이 됐지만 꿈을 좇아가려는 그녀의 모습에 친구들은 ‘너는 늙어 보이는데 철은 안든 것 같아’라고 평가한다든지, 유명한 출판사의 에디터인 프란시스의 절친 소피는 월가 증권맨을 만나 결혼하기 때문에 온갖 칭찬을 독차지하지만 견습생 무용수가 부끄럽지 않은 듯 프란시스는 나름대로 자신만의 세계를 설명하려고 노력합니다. 비록 사람들은 프란시스를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말이죠.
사실 프란시스는 아주 큰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린아이 같음을 벗어버리고 어른스러움의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죠. 그녀는 이제 대학도 졸업했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챙길 수 있는 나이가 됐으니 자신의 집도 장만하고 성인들이 나누는 대화에도 스스럼없이 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잘 되지는 않습니다. 가난한 무용수가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다 치더라도 왜 성인들이 나누는 대화가 프란시스에게는 어색하기만 할까요? 왜냐하면 프란시스는 삶의 모든 것이 깊은 관계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어른들의 세계는 효율을 가장 중요시합니다. 서로간에 관계를 맺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은 정해진 법칙 안에서만 허용됩니다. 그 이상의 관심이나 행동을 보이면 이상해 보이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적당하게 타협하는 것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프란시스는 타협을 모릅니다. 끝까지 모든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에서 자신을 오픈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모습이 프란시스에게는 노력이 아니라 존재 자체일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어른들에게는 ‘이상’하게만 느껴지는 것이죠.
어른들의 세계에서 괴짜로 취급 받는 프란시스는 끝까지 어린아이 같음을 붙들며 자신의 꿈을 좇아갈까요, 아니면 적당히 타협점을 찾으며 어른스러움의 옷을 입게 될까요? 프란시스는 결국 자신의 무용 선생님으로부터 회사 사무직원 제안을 받고 사무실에서 일하기 시작합니다. 비록 자신이 직접 무용수로 뛰지는 않지만 일반인들에게 안무를 가르치는 강사로 일하기도 하구요. 그렇게 자신의 일을 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프란시스도 집을 마련하게 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어른의 옷을 입어가는 프란시스의 모습이 어색해 보이기도 하지만 영화 내내 보였던 불안한 모습과는 달리 무척 안정적이고 행복한 미소를 연신 보여줍니다. 우리는 프란시스의 이런 모습을 보고 해피엔딩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프란시스가 자신의 집을 나서면서 우편함에 자신의 이름을 끼워 넣는 장면입니다. Frances Halladay. 프란시스 할라데이. 자신의 이름을 모두 우편함 이름표에 넣어야 하지만 공간이 너무 좁아 이름이 다 들어가지 않습니다. 꾸깃꾸깃 이름표를 집어넣다가 어쩔 수없이 프란시스는 성을 접어서 Frances Ha를 완성합니다. 그렇게 방황하던 27살 때 원했던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신의 제대로 된 이름을 다 넣지는 못하고 반을 접어야 하는 프란시스. 그렇게 원했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절히 타협하면서 나름의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는 그녀의 20대 후반을 보면서 기쁘기도 또 조금은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강도영 기획자 (빅퍼즐 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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