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박노해 사진전 : 쿠르디스탄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7-03-28 (화) 09:45 조회 : 2290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가끔 착각하고는 합니다. 과거의 역사나 먼 나라의 이야기를 마주할 때, 2017년 대한민국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하나의 이야기쯤으로, 하나의 에피소드로 치부해 버리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누군가는 실제로 겪어왔고, 지금도 다른 곳에서 어느 누군가는 실제로 겪고 있을 그 일이 마치 실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착각이요! 어쩌면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기에도 바쁜데, 과거를 돌아보고 지구촌 구석구석의 사정을 살피는 일은 나에게 사치인 것 같고, 그렇기에 다른 용감한 누군가가 대신 그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쁜 나날을 지내고 있지는 않나요? 그래서, 우리의 시선과 관심이 미처 닿지 못한 세계 곳곳을 다니며 필름에 기록하고 나누는 한 사람을 소개하고 싶은데요, 바로 시인 박노해입니다.

그는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1984년 현장 노동자로 활동하던 중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했습니다. 군사독재의 감시를 피해 사용한 ‘박노해’라는 필명은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으로, 그는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습니다. 2003년에는 이라크 전쟁터에 뛰어들어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 가난과 분쟁 현장에서 평화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는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로 기록해 온 사진을 모아 2010년 첫 사진전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글로벌 평화나눔 사진전을 상설 개최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그의 13번째 전시인 <쿠르디스탄> 사진전이 현재 ‘라 카페 갤러리’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비영리단체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라 카페 갤러리’는 박노해 시인의 글로벌 평화사진이 상설 전시되는 곳으로, 수익금은 평화활동에 쓰이고 있습니다.

이름도 생소한 ‘쿠르디스탄’은 쿠르드인의 땅이라는 뜻으로, 터키 남동부와 이라크 북부ㆍ시리아 북동부ㆍ이란 서부ㆍ아르메니아 남부에 걸쳐있으며, 칸딜 산맥을 정점으로 해발 4천미터 자그로스 산맥 아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발원하는 천혜의 땅입니다. 이 풍요로운 대지에서 수천 년간 독자적인 부족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온 쿠르드족. 그러나 지금 3천5백만 쿠르드인들은 지상 최대의 나라 잃은 민족이 되어, 터키ㆍ이란ㆍ이라크ㆍ시리아 등지에서 대부분 식민치하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쿠르디스탄>전에는 쿠르드인의 일상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8천년 된 하산케이프 다리위에서 빵을 굽고 양을 치고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온 쿠르드인들이지만, 중동의 수자원을 확보하고 통제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삶의 터전은 수장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쿠르드의 어린 소녀는 슬픔과 고난을 안고 있지만 웃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짓습니다. 쿠르드 난민 쥘리라르 보락은 터키어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가난 속에 여섯 아이를 직접 가르칩니다. “고난과 차별이 심해도 저는 터키어를 쓰지 않을 겁니다. 우리 아이들이 영영 쿠르드어를 잊어버리고 말 테니까요. 쿠르드인답게 살고 지켜가는 것, 그것이 저의 저항입니다.”

쥘리라르 보락이 터키어를 쓰지 않고 쿠르드어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은, 100여 년 전 일본어를 쓰지 않고 한국어를 지키고자 했던 우리의 모습과도 참 비슷합니다. 그렇기에 사진 속 쿠르드인들의 삶이 마냥 남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맞이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아픔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인 된 우리의 시선은 항상 낮은 곳을 향해야 합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거대한 일을 당장 시작할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는 지금 당장 관심을 갖기 시작할 수 있으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봄이 다가오는 3-4월의 어느 날, 부암동 언덕을 올라 쿠르디스탄의 사람들과 함께 새봄의 희망을 노래해 보는 건 어떨까요.

INFO

일시 : 2016년 12월 30일(금) - 2017년 6월 28일(수)
장소 : 라 카페 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백석동 1가길 19 (부암동 44-5)
오전 11시 - 오후 10시 *매주 목요일은 휴관
관람료 : 무료
문의 : 02-379-1975 www.racafe.kr

김성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