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꿈 이룰 수 없어도 몇 년째 노력해오던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뾰족한 성과도 없었고, 그렇다고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 모두 그만둬야겠어, 짐을 챙겨서 떠나는 거야.” 짐 보따리를 싸들고 나오면서 문득 마지막으로 공연이나 한편 보고 떠날까 싶어, 한 극장에 들어가 가진 돈을 탈탈 털어 몇 자리 남지 않은 2층 좌석 티켓 한 장을 구입해 짐을 끌어안고 앉았습니다. 얼어붙은 마음 상태 때문인지 공연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객석에 앉아있는 시간 내내 마음이 녹아 내리더니, 급기야는 주인공 돈키호테의 명대사-‘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것이 미친 것이 아니라, 꿈꾸기를 포기한 것이 진짜 미친 것이오’-에 한 방을 맞고 말았습니다. 눈물에 젖어 퉁퉁 부은 눈으로 공연이 끝난 밤 열한시 반에 주섬주섬 짐을 챙겨 ‘그래, 여기서 포기할 순 없어’ 하며 처음에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는 전설(?).<맨 오브 라만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무용담입니다. 꿈을 놓으려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일침을 가하던 이 작품은 어느새 국내 초연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스페인의 어느 지하 감옥, 신성모독죄로 감옥에 끌려온 작가 세르반테스는 죄수들과 함께 감옥 안에서 즉흥극을 벌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돈키호테’ 이야기입니다. 라만차에 살고 있는 알론조는 기사 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은 탓에 자신이 돈키호테라는 기사라고 착각하고 시종인 산초와 모험을 찾아 떠납니다. 풍차를 괴수 거인이라며 달려들고, 여관을 성으로 착각하며 하녀인 알돈자에게 아름다운 여인 둘시네아라고 부르며 무릎을 꿇고 여관주인을 성주라고 착각하고 기사작위를 수여 받는 기행을 일삼습니다. 천한 하녀 알돈자는 모든 사람이 그러듯 돈키호테를 미친 노인이라고 무시하지만 그의 진심에 감동받아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소중하게 대해주는 돈키호테를 보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억센 노새끌이들에게 처참히 짓밟힙니다. 절망에 빠진 알돈자는 자신은 숙녀도 아니며 더럽고 천한 거리의 여자일 뿐이라고 울부짖고,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돈키호테 앞에 이번에는 거울의 기사들이 나타나 결투를 신청하는데 거울에 비친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본 알론조는 자신이 기사 돈키호테가 아니라 그저 한 노인임을 깨닫고 쓰러지고 맙니다. 그는 이대로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게 될까요 쓰러진 그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무엇일까요.
196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초연 당시 탄탄한 작품성으로 이듬해 토니상 5개 부문을 석권하고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리바이벌 되고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초연에 참여했던 배우 류정한이 다섯 번 째로 돈키호테를 다시 맡았고, 이 작품으로 더뮤지컬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던 배우 조승우가 돌아옵니다. 알돈자 역은 생생한 캐릭터 구축으로 연기를 인정받는 배우 전미도와 빼어난 가창력과 무대매너로 자신의 필모그라피를 차근차근 구축해온 린아가 연기합니다. 또한 돈키호테의 충복 산초 역에는 천의 얼굴을 가진 정상훈과 김호영 배우가 맡아 서로 다른 색채로 ‘산초’의 감초 연기를 보여줍니다.
올해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국내초연 10주년이자 이 작품이 세상에 선보인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또한 소설 <돈키호테>가 완간된 지 400주년이 되는 해이며, 한국에 소개된 지는 100주년이 된 의미있는 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이 ‘정신을 놓은 늙은 기사’의 이야기에 매료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타이틀곡인 ‘이룰 수 없는 꿈(The Impossible Dream)’을 들여다보면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꿈은 이루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늘 마음에 담고 그것을 품기 위해 존재하며, 꿈을 향한 불굴의 의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INFO 일시 : 2015년 7월 30일(목) ~ 11월 1일(주일) 화, 목, 금 8시 / 수 3시, 8시 토 3시, 7시 30분 / 일 3시 (월공연없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