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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세계를 품다
긴급 구호 활동가 한비야는 박사학위를 준비하는 동안 생활 지침을 정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열공틈놀!’ 열심히 공부하고 틈틈이 놀자는 뜻입니다. 청소년들에게도 필요한 지침이 될듯싶습니다.
한비야는 홍익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후 미국에서 국제홍보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전공을 살려서 국제홍보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뒤늦게 어린 시절의 꿈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그 꿈은 ‘걸어서 세계 일주’였습니다. 결국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잘 나가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세계 곳곳을 열심히 걸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글쓰기와 강연, 국제 NGO인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 팀장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꿈인, 걸어서 세계 일주를 하고 싶다는 그 소원이 결국에는 현실이 된 것입니다. 그녀는 걸으면서 눈과 마음으로 보았고 그 여정을 통해 인간의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걸음을 통해 드넓은 세상을 품게 된 것입니다. 그녀가 걷거나 일한 곳은 아프리카, 이라크,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그리고 네팔을 포함해 백여 곳입니다.
요즘 가까이는 제주도의 ‘올레길’부터 멀게는 중동 지방이나 몽골의 사막, 스페인의 순례자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걷기에 매혹되는 것일까요? 걷는 행위를 통해서 얻는 게 뭘까요.
한비야는 걷는 여행을 최고로 꼽습니다. 걷는 여행은 가장 화려하고 짭짤한 여행이라고 말합니다. 비행기를 타면 빨리 갈 수는 있지만, 걸으며 챙길 수 있는 풍경과 향기, 수많은 사건을 놓치고 맙니다. 인생이 여행과 닮았다면 그 예상치 못함을 가장 풍성하게 체험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는 등 오감을 모두 동원하는 화려한 체험입니다.
한비야에게 걷는 것은 매우 진지하고 사색적인, 특별한 행위였습니다. 걷는 것은 그저 단순히 개인의 만족을 위한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국적을 막론하고 고통 받고 신음하고 있는 세상과의 소통을 원하는 마음에서 세상을 걸었던 것입니다.
언젠가 아내에게 친구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의 경험담을 쓴 에세이로 좋은 평가를 받아 대학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바로 걷기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크게 혼난 남학생은 갑자기 차에서 내려 집에 걸어가겠다고 우겼습니다. 아무리 말려도 고집을 부리자 엄마는 아들을 차에서 내리게 했습니다. 아들이 걱정됐지만 ‘버스 타고 집에 오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집까지 60킬로미터가 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아들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엄마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열시간이 지나서야 아들은 집에 도착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집에 왔느냐는 엄마의 물음에 아들은 대답했습니다. “그냥 걸어왔어요.”
남학생은 그날의 경험을 에세이로 썼습니다. 자신이 열 시간 넘게 걸어오면서 느낀 것, 관찰한 것을 정리했습니다. 낯선 길에서 헤매다 길을 찾은 이야기, 새롭게 눈에 들어온 나무와 자연과 세상, 부모님과의 관계 등을 진솔하게 담아냈습니다. 열 시간을 놀기는 쉬워도 걷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그 걷는 시간 속에서 그 남학생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을 살피는 능력을 키웠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볼 수 없는 세상을 기차를 타면 볼 수 있습니다. 기차를 타면서 볼 수 없는 세상을 자동차를 타면 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로 보기 어려운 세상을 자전거를 타면 볼 수 있습니다. 자전거의 속도로 볼 수 없는 세상은 천천히 여유롭게 걸을 때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천천히 가야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스피드’ 혹은 ‘초스피드’를 즐기는 시대에 살지만 스피드 때문에 놓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쯤은 걷기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요?
시골 마을이나 시내 한복판, 전혀 가보지 못한 낯선 땅도 좋습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 여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 속에서 얻는 것이 있습니다. 뜻밖의 생각이라든지 의미 있는 만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김요한 대표 (사단법인 WAF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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