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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가깝게 다가가기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는 191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대인 양복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열여덟 살에 집을 떠나 독일 베를린에 갔다. 그리고 정치사회학을 공부하며 당시의 유명 사진 에이전시 데포트에서 암실 조수로 일하며 보도사진을 접했다.
카파는 1932년 11월 망명 중이던 러시아의 혁명가 트로츠키가 코펜하겐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바로 이 사진이 인쇄매체에 실린 카파가 찍은 최초의 사진이다. 카파는 이때부터 사진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카파는 ‘전쟁 사진작가’로 유명하다. 평범한 사진가였던 그는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연인을 잃은 뒤 전선 기자로 변신했다. 스페인 내전을 시작으로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중동전쟁, 인도차이나전쟁의 종군 사진기자로 참전하여 전쟁 보도사진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1936년 9월 스페인 내전에서 촬영한 <왕당파 병사의 죽음>은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주었다. 1944년에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취재해 명성을 떨쳤다. 두려움에 손이 심하게 떨려 사진의 초점은 엇나갔지만, 오히려 그 덕에 당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걸작이 됐다.
그는 전쟁의 실상을 생생하게 기록하기 위해 위험한 전쟁터를 누볐다. 그러면서도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블로 피카소 등 당대의 작가·예술가와 활발히 교류하고,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과 연애하며 사교적인 생활을 즐기고, 한가로운 일상 사진을 찍기도 했다.
카파는 잉그리드 버그만과의 연애로 유명해졌지만 결국 ‘사진을 찍는 일’ 때문에 버그만과의 결혼을 거부했다. 어느 것 하나 예측할 수 없던 전쟁터에서 생생한 현장 사진을 담아냈던 그에게 잘 짜인 대본처럼 돌아가는 할리우드는 매력이 없었던 것이다.
카파는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1954년 인도차이나 전쟁터로 취재를 위해 떠난다. 전선을 누비며 치열한 전투를 촬영하다가 지뢰를 밟는 사고를 당하면서 마흔한 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짧은 생에 동안 카파가 뷰 파인더를 통해 본 것은 오로지 전쟁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철한 기자정신을 그의 이름을 따서 ‘카파이즘’이라고 부른다.
그의 충격적인 전장 사진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진실을 마주하려고 했던 로버트 카파는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사진에만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인생에서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이 그렇지 않을까. 내가 하는 공부, 내가 만나는 친구, 내가 하는 일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면 내가 충분히 다가서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김요한 대표 (사단법인 WAF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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