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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살롱>
커쇼의 위대한 마무리를 보며
9살, 아빠 손 잡고 잠실 야구장에 들어섰던 날. 그날 이후로 저는 스포츠 팬이 됐습니다. 종목 가리지 않고, 스포츠라면 즐겨보는 팬이 되어버렸죠. 언젠가 발견하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저는 스포츠경기가 주는 강렬한 쾌감보다도, 한 명의 선수가 걸어간 삶에 관심이 많더군요. 한 선수가 걸어간 삶을 가만히, 차분히 들여다보면 우리에게 힘을 주고 도전을 주는 이야기들이 꽤 많습니다. 제가 앞으로 펼쳐낼 그 이야기들을 통해 여러분의 삶에 새로운 영감이 더해지길 기대해봅니다.
커쇼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클레이튼 커쇼’에대해 익숙하지 않은 분도 있을 테니 아주 간략하게 그의 위대한 여정에 대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우선 그는 야구 선수입니다. 세계에서 야구를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미국프로야구 에서도 가장 실력이 좋은 투수입니다. 그가 미국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투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지난 20년 미국프로야구 투수 중 가장 뛰어난 투수가 커쇼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가 지난 18년간 남긴 기록을 간략히 남기자면 이러합니다. 통산 455경기(451선발) 출장. 2855 1/3이닝 투구. 223승 96패. 평균자책점 2.53. 탈삼진 3,052개. 쉽게 말해 그가 야구 한 경기 9이닝을 다 책임진다고 가정했을 때 그는 3점도 내주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18년간 보여주었다는 겁니다. 18개월도 아니고 18년입니다.
커쇼가 올해 보여준 세 가지 장면을 통해서 그가 가진 또 다른 위대한 면모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장면은 2025년 7월 3일, 그가 통산 3,000탈삼진을 잡는 순간입니다. 두 번째 장면은 2025년 9월 20일, 그가 자신의 홈구장인 LA다저스타디움에서 정규 시즌 마지막 홈경기를 마치고 내려올 때의 장면입니다. 마지막 장면은 2025년 9월 29일, 그의 정규 시즌 마지막 원정 경기인 시애틀 매리너스를 상대로 투구를 마치고 마운드에서 내려올 때의 장면입니다.
세 장면 모두 팬들의 환호성이 얼마나 뜨거웠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어쨌거나 스포츠는 기록의 스포츠입니다. 스포츠 선수의 실력과 열정과 진정성을 증명할 수 있는 건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삼진을 매년 200개씩 잡아도 15년을 꾸준히 잡아야 3,000탈삼진에 도달합니다. 그가 3,000탈삼진을 잡는 순간 홈구장이었던 다저스타디움은 환호성에 휩싸였습니다.
자신이 사랑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홈구장에서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마운드에서 내려올때 팬들이 보냈을 환호성 역시 얼마나 뜨거웠겠습니까. 비록 원정 경기이긴 했지만,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도, 커쇼를 향한 원정 팬들의 환호성은 뜨거웠습니다.
저는 특별히, 이 세 장면에서 보여준 커쇼의 작은 몸짓에 눈이 갔는데요. 그가 늘 모자를 벗어 팬들을 향해 감사를 표현할 때 관중석에 있는 자신의 가족을 향해서는 ‘특별한 제스처’를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저에게는 그의 특별한 제스처가 이렇게 다가왔습니다.
“여기에 있는 수만 관중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고마운 존재는, 내가 두고두고 기억할 가장 소중한 존재는 나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준 우리 가족입니다.”
아내와 네 자녀를 향해서 손을 뻗는 커쇼의 제스처가 저에게는 이렇게 다가왔다는 겁니다. 혹시, 이 대목을 읽으시면서 ‘그게 뭐 그렇게 특별한 제스처인가요?’라고 반문하는 독자가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게 결코 누구나 품을 수 있는 마음이 아니라고 봅니다. 자신이 특정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쌓고 대중들로부터 환호를 받을 때, 누군가는 그것이 전적으로 자신의 역량 덕분이라고 여기며 있는 힘껏 고개를 쳐들 때도 있습니다. 대중의 환호에 취해서 자기가 이곳에 오기까지 함께해준 사람들을 잊어버리는 거죠.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 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반대로, 자신이 특정 지점에 도달하기까지 곁에 있었던 수많은 조력자들을 분명히 기억하는 슈퍼스타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분명 다릅니다. 팬들은 그들의 성취에 열광했지만, 그들의 겸손함에 감동받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겸손함이 표현되는 그 시작은 바로 “자신의 가족을 향한 감사”일 것입니다. 저는 커쇼의 위대한 세 장면을 통해 그에게 배어 있는 겸손함을 잠시 읽었던 거 같습니다. 추측컨대, 가족을 향한 그의 태도는 가족에게만 머물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동료 선수들에 대한 고마움을 분명, 매우 선명히 간직하며 마운드에서 내려오지 않았을까요?
인간이란 존재는 참 간사하기 짝이 없습니다. 특정 지점에 도달할 때는 조력자를 애타게 찾습니다. 자신의 열망(때론 야망)을 구현해 줄 동반자를 절실히 찾아 헤맵니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했을 때 그 성취가 마치 자기 혼자서 거둔 성취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커쇼처럼 대단한 성취를 거두며 살순 없을 겁니다. 그래도 내가 지금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수행하고 있다면 그 옆에는 어떤 식으로든 조력자들이 존재할 겁니다. 그들을 ‘커쇼처럼’ 기억하고 싶습니다.
성취의 양보다 중요한 건 내 곁의 조력자에 대한 감사일 테니까요.
소재웅 작가 (『전자슈터 김현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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