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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5-12-10 (수) 09:19 조회 : 230
사랑의 상흔



『이어령의 말』이라는 책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손바닥에 찍힌 못 자국을 가지고 있다. 옆구리에 창자국을 가지고 있다. 비록 예수의 것보다 작고 희미할 망정, 누군가를 절실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고통의 상흔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선택한 사람은 누구나 마구간에서 태어나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 같은 괴로운 삶을 선택한 사람인 것이다. 만약 당신이 편안한 삶, 살쪄가는 삶, 부유한 삶을 원한다면 누구도 사랑해서는 안 될 것이다(이어령, 이어령의 말, 세계사, 30p).”



여러 번 곱씹게 만드는, 깊은 여운을 남기는 문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본질이 그러함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상흔은, 성육신으로 시작되어 십자가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로마서 5장 8절).” 성부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이렇게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니 독생자를 내어주신 아버지의 심장에도 깊고 선명한 사랑의 상흔이 있습니다. 때문에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 일로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난한 형제를 보고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겠습니까(요한일서3장 16-17절)?”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따라 사는 모든 제자에게도 사랑의 상흔이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랑은 쉽지 않습니다. 사랑의 본질이 이러하기 때문입니다. 이어령의 말처럼, 사랑의 상흔을 원하지 않는다면 사랑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세상은 사랑 노래로 가득합니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와 소설들은 사랑을 그립니다. 그러나 이런 사랑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사랑의 상흔이 없고, 사랑의 상흔을 두려워하는 이 세상의 사랑은 한없이 나약하고, 쉽게 오염되며, 쉽게 변해 버립니다. 세상의 사랑은 불완전함 모조품에 불과합니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내 생명마저 주려고 왔다(마가복음 10장 45절).”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친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양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래서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떼를 흩어 버린다(요한복음 10장 11-12절).”



예수님은,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랑을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참 사랑을 가르쳐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때문에,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무엇’을 얻느냐가 아닌 ‘누구’를 얻느냐의 문제입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성탄을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신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가 그를 통해 살수 있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자기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제물로 삼아주셨습니다(요한일서 4장 9-10절).”



우리를 위해 어린 아기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12월, 나로 인해 주님에게 새겨진 사랑의 상흔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 깊이 알게 되고, 그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쫓고, 우리를 진정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샬롬이 있기를 바랍니다.



김건우 목사 (좋은씨앗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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