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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6-01-02 (금) 14:16 조회 : 190
변질된 자부심



얼마 전 볼일이 있어 잠시 서울대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복을 입은 몇몇 분의 가슴에 학교 배지가 달린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 보는 서울대 배지였지만, 이상하게도 그것만으로도 어떤 권위와 품격이 느껴졌습니다. 많은 학교나 대기업이 배지를 만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소속감과 정체성 그리고 그 공동체에 대한 건강한 자부심을 일깨우기 위해서입니다.



사전은 자부심을 “자신의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정의합니다. 실제로 자부심은 삶에 에너지를 주고,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게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건강한 자부심도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면 금세 자만심으로 변질된다는 것입니다.



자만심이란 “자신과 관련된 것을 자랑하고 뽐내는 마음”입니다. 신앙적 관점에서 두 마음을 구분하는 기준은 분명합니다. 자부심의 중심은 하나님과 공동체이고, 자만심의 중심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자부심은 감사와 정체성에서 나오지만, 자만심은 비교와 우월감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비교와 우월감은 결국 인간을 헛된 망상으로 이끌어 갑니다.



이 변질된 자부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성경 속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은 선민의식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택함 받은 백성이다’, ‘율법을 가진자다’라는 의식이 그들의 뼛속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특히 로마서가 기록되던 당시에는 그 우월감이 더욱 강했습니다.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느니라(로마서 2장 17-18, 개역개정).”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다는 것은 분명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 감사는 어느 순간 우월감과 정죄의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자부심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태도이지만, 변질된 자부심은 타인을 판단하고 깎아내리는 도구가 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왜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마태복음 7장 3절).” 유대인들은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여기면서도 자기 안의 교만은 보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착각을 향해 분명히 선언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방인보다 낫단 말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미 선언한 것처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같은 죄인입니다(로마서 3장 9절).” 우리는 누구에게도 “나는 괜찮다”고 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자부심은 “나는 선택받은 민족이다”라고 말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나는 여전히 연약하지만, 그런 나를 오늘도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 이 고백을 하는 사람이 진짜 자부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변질된 자부심은 나와 남을 죽이지만, 은혜의 자부심은 나와 공동체를 살립니다. 우리는 잘나서 부르심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들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의 자부심은 하나님을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장준영 목사 (혜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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