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또 한 해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 사계절은 또 다시 어김없이 흘러갈 것입니다. 계절은 종종 은유로 활용됩니다. ‘인생의 사계절’처럼 말이죠. 문득, 계절이 또 다른 은유로 쓰일 수 있다면 ‘인간관계’에도 쓰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관계의 봄, 여름, 가을… 관계의 겨울처럼 말이죠.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두 남녀, 제이미와 캐시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헤어지기까지 5년간의 시간을 담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단 두 명의 남녀 배우가 대사를 배제하고 음악으로만 공연 전체를 채우는 송스루(Sung-through) 뮤지컬입니다. ‘사랑과 이별’을 다루는 일반적인 작품들과 다른 점은 두 남녀의 시간이 서로 반대로 흘러 공연 내내 서로 엇갈린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인데, 남녀 간의 서로 다른 시간과 감정을 한 무대에서 번갈아 보여주는 열네 개의 장을 통해 사랑과 이별의 감정들을 섬세하고도 아련하게 그려냅니다.
두 남녀 주인공과 더불어 이 작품의 세 번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음악은 두 대의 첼로, 바이올린, 베이스, 기타, 피아노 등 6개의 악기로 표현되는 클래식하고 서정적인 선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섬세한 음악을 통해 사랑의 환희와 좌절, 고통 그리고 이별의 아픔이 관객에게 오롯이 전해집니다. 이 작품을 창작한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Jason Robert Brown)은 브로드웨이 작곡가이자 뮤지컬의 전설로 불리는 스티븐손드하임 이후 최고의 뮤지컬 작곡가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우리나라에서 지난 2003년과 2008년에 공연된 바 있습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사랑과 이별의 감정은 시대를 타지 않는 보편적인 감정이기에 많은 팬이 이 작품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작사인 신시컴퍼니는 이 작품이 가진 특유의 섬세함과 주연 배우들에게 필요한 높은 음악성으로 인해 캐스팅이 쉽지 않았고 그로 인해 오랜 공백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2024년 프로덕션에서는 깊은 감성과 가창력을 가진 배우 박지연, 민경아와 이충주, 최재림이 캐스팅되어 기대를 모읍니다.
이 작품의 이지영 연출가는 이 작품에 대해 ‘남녀의 만남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 즉 일과 사랑, 종교, 가족, 정체성, 사회적 역할에 대한 갈등 등 우리의 인생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혼란들로 관객들을 이끈다. 성별이나 나이를 초월해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연출 의도에 대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애틋하고 쓸쓸한, 그리고 적나라한 사랑 이야기 속에서 나와 마주하며 각자의 사랑과 인생,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물음에 도착할 수 있게 작품을 만들고 싶다.”
다시 계절의 은유로 돌아가서 관계가 시작된 따스한 봄, 무르익고 창창한 여름 같은 관계, 점점 시들어가는 가을 같은 관계, 결국 외롭고 쓸쓸해진 겨울 같은 관계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인간관계의 유통기한을 말하는 시대에 이 은유는 제법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오는 법 - 관계는 흘러가고 끝난 것 같아 보여도 필시 사랑과 이별에 대한 기억은 또다른 계절을 맞이할 수 있는 감정의 작은 씨앗을 남길 것입니다. 스산한 겨울처럼 마음이 유독 시린 어느 날, 언젠가 다시 찾아올 봄을 기대하면서 이 작품을 만나보면 어떨까요.
한아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