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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떻게 할까
1993년 겨울, A여고 반지하에 자리한 도서관은 조용하지만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공간입니다. 책장 사이로 비치는 형광등 불빛 아래, 네 명의 여고생은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 모여 있습니다. 뮤지컬 〈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은 이 도서관을 중심으로, 아직 세상을 다 알지 못한 소녀들이 처음으로 ‘미래’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마주하게 되는 순간을 그려냅니다.
도서부장 ‘명경’은 예지몽을 꾸는 소녀입니다. 그녀에게 미래는 희망이 아니라 두려움에 가깝습니다. 꾼 꿈이 현실이 될까 두려워 소풍도, 수학여행도 가지 않고, 방과 후면 늘 도서관에 머물며 하루를 보냅니다. 그런 명경 곁에는 각기 다른 사연을 품은 도서부원 ‘지수’, ‘환희’, ‘수영’이 있습니다. 이들은 도서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만큼은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기에 이곳에 자주 모입니다.
어느 날, 비가 내리던 오후, 도서관 창밖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남자의 발목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의 문학 선생님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곧 교내에는 선생님을 둘러싼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선생님이 도서관에 기증했던 책들 가운데 실제로 금서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이들은 망설임 끝에 그 책을 몰래 읽게 되고, 책 속에 남겨진 흔적과 단서를 따라 선생님의 행방을 좇기 시작합니다. 그 여정의 끝은 강릉입니다. 반지하 도서관을 벗어나 처음으로 낯선 도시를 향해 떠나기로 결심하는 순간, 이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어른의 세계 한가운데로 발을 들입니다.
그러나 명경은 또다시 불길한 꿈을 꾸고, 여행을 앞두고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미래를 미리 안다는 것은 선택을 가로막는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시 힘을 합치면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거야.” 지수의 한마디는 명경과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피할 수 없는 미래’가 아닌 ‘함께 만들어 갈 미래’라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여기서 이 작품은 사라진 선생님을 찾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가두고 있던 두려움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신을 찾으려는 성장 기록이 됩니다. 작품은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청소년기 특유의 불안과 책임감, 선택의 무게를 섬세하게 드러냅니다. 미래를 안다는 것이 과연 축복일지, 아니면 짐일지를 묻는 질문은 미래를 앞둔 우리 모두에게도 의미 있는 질문이 될 것입니다.
이 작품은 2024년 공연예술창작산실 대본 공모를 통해 발굴된 이후 2025년 ‘올해의 신작’을 통해 무대에 올랐습니다. 90년대 초의 공기와 여고생들의 정서를 밀도 있게 포착한 서사로 주목받았습니다. 뮤지컬 〈팬레터〉, 〈개와 고양이의 시간〉을 집필한 한재은 작가는 반지하 도서관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인물들의 심리와 관계를 촘촘하게 쌓아 올리며, 말하지 못한 감정과 선택의 순간들을 설득력 있게 그려냅니다. 음악은 박현숙 작곡가가 맡아 여고생들의 불안과 우정을 섬세한 선율로 풀어냅니다. 인물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이기쁨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여고생들의 미묘한 관계 변화와 내면의 진폭을 입체적으로 구현합니다. 여기에 김길려 음악감독과 홍유선 안무가가 합류해 작품의 완성도를 더합니다.
뮤지컬 〈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은 질문으로 시작해 선택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미래를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은 네 명의 여고생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자, 관객에게도 조용히 건네는 물음입니다. 이 작품은 지금 이 순간의 용기와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한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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