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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 둘레길
길은 공간과 공간, 시간과 시간, ‘나’와 ‘너’를 이어줍니다. 인간은 그렇게 길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곳과 이곳을 만납니다. 길은 단순히 공간 이동을 위한 통로만이 아닙니다. 길은 ‘나’와 ‘너’의 나눔과 문화를 공유하게 합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랬듯이 이 땅의 길을 걸으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동행할 수 있다면 삶의 의미를 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굳이 산티아고가 아니어도 존재의 의미를 더할 수 있다면 그 길을 함께 걸어보면 어떨까요?
해발 228.3m, 산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그러나 거대한 산으로 인식될 수 있을 만큼 듬직한 석산, 또한 서해의 낙조와 다도해를 품을 수 있을 만큼 넓은 품을 가지고 있는 산, 목포의 유달산입니다.
작지만 큰 산, 낮지만 높은 산, 다도해에서 바라보는 유달산은 거대합니다. 굳이 등대가 없어도 먼 다도해에서 목포를 지나 영산강을 거슬러 영산포에 이르기까지 배들의 길잡이를 했던 것도 유달산입니다. 작지만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곳곳에 이름표를 걸고 있는 바위들이 각각의 역사와 의미를 지닌 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습니다. 노적봉, 복바위, 투구바위, 고래바위, 종바위, 조대바위, 애기바위, 마당바위, 얼굴바위, 장미바위, 이등바위, 수도바위, 거북바위, 장수바위, 흔들바위, 손가락바위, 입석바위, 나막신바위, 떡바위 등 그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모양과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노적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위는 단연 유명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노적봉을 이용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다도해를 통해서 접근하는 왜군들에게 많은 군대가 군량미를 준비하고 전투를 준비한 상태로 보이게끔 노적봉을 이용해 위장전술을 하여 왜군들을 퇴각시켰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발전한 것이 강강술래이기도 합니다.
목포 구도심은 유달산 동남향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달산은 황해를 건너 휘몰아쳐오는 하늬바람과 눈을 싣고 오는 높바람을 막아주는 방패막이가 되어주니, 목포인들에게는 든든한 울타리와 같은 산입니다. 게다가 작지만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이니 불교의 여러 사찰과 온갖 무속인들이 깃들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1894년 봄 레이놀즈(William D.Reynolds) 선교사와 드류(Alessandro DamarDrew) 선교사가 찾아오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자리를 잡은 곳도 바로 유달산 자락입니다. 그리고 훗날 유달산을 중심으로 그 자락을 빙 둘러 교회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개항과 함께 일본인들의 지배를 받게 된 아픈 역사가 이어졌지만, 그러한 중에도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한 복음의 빛이 비출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조선이 몰락하는 과정과 식민지 수탈에 따른 가난은 자식마저 거둘 수 없어서 거리로 나앉아야 했기에 고아들이 모여들었던 곳도 유달산 기슭입니다. 그 아이들을 거두기 위해 19세 청년 윤치호가 총각 아버지, 거지 대장을 자처하여 자리를 잡았던 곳도 이곳입니다. 그나마 그들에게 허락된 곳은 황해를 건너온 한겨울의 삭풍을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서쪽자락이었으니 춥고 서러운 곳이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지금도 공생원이 여전히 아이들을 품고 있습니다.
어디서 출발하든지 장애물 없이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둘레길 덕분에 걷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체력이 되는 만큼, 관심이 있는 곳으로, 그리고 전망을 따라 어디를 선택하든 소위 뷰가 아름다운 둘레길입니다. 야경은 물론 다도해가 만들어주는 낙조는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기에 찾는 이의 발걸음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붙들어 놓습니다. 게다가 2019년 영업을 시작한 목포해상케이블카는 국내 최장 케이블카로(3.23km) 유명세를 타고 있으니, 그것을 타고 목포항 건너편 고하도까지 다녀오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유달산 둘레길을 걷고, 노적봉을 돌아 영산로 59번길로 내려가면 교회들이 보입니다. 그중에 목포제일교회 입구에 이르면 바로 옆에 <엄작가 커피>라고 하는 작은 이름표를 달고 있는 카페가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맛있는 커피를 찾느라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으로서 만족할 만한 커피를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선택과 함께 실망도 하고, 기대 이상의 커피를 만났을 때는 기쁨이 두 배가 되기도 합니다.
목포기독교역사와 관련한 강의 요청이 있어서 아내와 함께 갔다가 오랜만에 찾았던 유달산과 둘레길 그리고 영산강 한옥에서 머물렀던 하룻밤이었습니다. 피곤한 일정 가운데 <엄작가 커피>를 만나서 위로와 쉼을 얻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낯선 곳에서 쉼을 얻을 수 있고, 커피가 고플 때 맛있는 커피를 만나면 최고의 위로가 됩니다.
사실 영산강에서 쉬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엄작가 커피>이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검색을 시작해서 낙점한 곳을 향해 무조건 달렸습니다. 아직 아무도 찾지 않은 카페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주인장은 이른 시간 카페를 찾은 나와 아내를 보고 조금은 의외다 싶은 표정이었습니다. 조용히 물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커피가 될지? 들어서면서 카페 내부를 보니 커피머신이 없는 것을 보고 최소한 맛을 기대해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장에게 맛있는 커피를 부탁했습니다.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콩을 볶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주인장의 본업은 포토그래퍼입니다. 그래서 엄 작가라는 이름표를 달았답니다. 그만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커피도 내린다는 의미입니다. 그곳에 가면 맛있는 커피 <엄작가 커피>가 있습니다.
이종전 목사 (어진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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