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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부함에 관하여
산상보훈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복과는 정반대입니다. 가난한 자, 우는 자, 온유한 자, 핍박을 받는 자 등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보고도 우리의 기도는 여전히 세상의 복을 갈구합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추구하는 부자, 헛된 기쁨, 강함과 지배를 복으로 생각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그렇게 가르친 목사들의 설교도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요? 왜 주님이 가난을 택했고, 어린양처럼 온유하셨고, 십자가의 애통한 길을 가고자 기도하셨을까 생각해 봅시다.
그 길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요, 참 인간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될수록 하늘 가는 길이 안 보이고 세상 길이 보이며, 사람이 우습게 보입니다. 그러기에 부자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하늘나라 가기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스스로 교만하거나 자랑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누가 알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지배할 수도 없습니다.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원치 않아도 고개를 수그리고 섬기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 앞에서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자는 이 땅이 너무 좋아 여기가 좋다며 머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은 이 땅의 삶이 너무 외롭고 고달파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따른 자들 대부분이 가난한 사람들이었던 까닭도 그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은 내 나라가 아니고 하늘나라가 내 나라라고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골프채를 든 사람과 동냥바구니를 든 사람 중 누가 더 복음에 귀를 기울일까요? 누가 더 목이 말라 물을 달라고 할까요? 산상보훈에서도 목이 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지 않았던가요? 아직까지 한국 재벌 중 주님을 믿는 자는 드뭅니다. 그들은 하늘의 소리에 귀를 틀어막고 있습니다. 반면 노숙자들은 역 광장 무료급식소에서라도 찬송가를 듣고 있습니다. 설움 설움 중에서 제일 큰 설움은 가난이란 말이 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가난의 넝마는 이 한국 땅을 살기에는 너무 불편한 저주입니다. 그러나 가난은 천국을 가는데만큼은 너무 큰 축복입니다. 성경 어디에선가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사랑하신다는 구절을 읽은 듯합니다!
이창훈 목사 (목양침례교회 담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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