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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푹푹 나리고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중략...)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시인 백석(1912-1996)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 일부입니다. 백석은 천재적인 재능과 훤칠한 외모로 젊은 시절 뭇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 기생 김영한과의 러브 스토리는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가슴이 절절합니다. 백석이 함흥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1936년 회식자리에서 기생 김영한을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오늘부터 당신은 내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 우리 사이 이별은 없어요.” 백석은 그녀에게 ‘자야(子夜)’라는 애칭을 지어줬고 행복한 시절을 보냈지만, 백석의 집안은 그들의 사랑을 반대하며 강제로 그를 다른 여자와 결혼시키려 합니다. 백석은 자야에게 만주로 도망을 가자고 제안하지만 자야는 자신이 백석의 장래에 해가 될까 거절합니다. 백석은 언젠간 자야가 자신을 찾아올 것을 확신하며 먼저 만주로 떠나고,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짓습니다. 해방이 되자 백석은 오지 않는 자야를 찾아 만주에서 함흥으로 내려갔지만 자야는 당시 서울에 있었고, 곧 3.8선이 그어지면서 둘은 각각 남과 북으로 갈라져 다시는 마주하지 못하게 됩니다. 백석은 결국 돌아오지 못한 채 북에서 1996년 사망하게 되지요. 평생 백석을 그리워하던 자야는 세상을 떠나기 전 1,000억 원의 재산을 기부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반세기에 걸친 이들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바로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입니다. 지난 겨울 우란문화재단에서 쇼케이스 공연으로 만들어진 후 관객들의 극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본 공연으로 돌아왔습니다. 흰 눈 내리는 소리만 나는 빈 무대 위, 그리움 속에서 백발 노인이 된 자야 앞에 돌연 청년 백석이 말쑥한 모던 보이로 어느 날 찾아와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합니다. ‘나처럼 천한 여성을 한 시인이 사랑해서 한 줄 나타샤로 만들어준다면 기꺼이 그렇게 살겠다’며 평생을 바친 한 여인, 그기억 속에 녹아있는 시인 백석의 아름다운 시어들이 잔잔한 음악과 함께 펼쳐집니다. 깔끔하고 고지식한 면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너스레를 잘 떠는 시인 백석 역에는 강필석, 오종혁, 이상이 배우가, 평생을 백석과 헤어지던 순간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 자야부인 역에는 정인지와 최주리 배우가, 둘의 사랑을 기억하고 연결해주는 사내 역에는 안재영, 유승현 배우가 캐스팅되었습니다. 백석은 60년대에 이미 북에서 정치적으로 숙청당해 90년대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농장 노동자로 고된 삶을 살았다는 설이 있고, 남한에서도 1987년 재북 작가에 대한 금지령이 풀리기 전까지 그의 작품은 금기시 되었습니다. 시대는 차갑게 흘러갔지만 이에 아랑곳 않고 자야부인은 헤어진 시인을 기다리며 그의 시를 닳도록 읽고, 또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이 시를 안고 흐르는 새, 그리움 묻어나는 활자 위엔 흰 눈만 쌓여 갑니다. INFO 일시 : 2016년 11월 5일(토) ~ 2017년 1월 22일(주일) / 화~금 8시 / 토요일 3시, 7시 / 주일 및 공휴일 2시, 6시
장소 : 드림아트센터 2관 더블케이씨어터
연출 : 오세혁
작 : 박해림
작곡 : 채한울
출연 : 강필석, 오종혁, 이상이, 정인지, 최주리, 안재영, 유승현
티켓 : 전석 5만 5천원
제작 및 문의 : (주)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02-541-7110 한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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