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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9-02-21 (목) 09:52 조회 : 2157
덕담

Ⅰ. 생각해 본다

1970년대 말, 나는 읍내에서 십리 거리에 있던 우리 마을에서 오리를 더 걸어 올라가야 하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두웠던 시절이었지만 크리스마스만은 이상할 만큼 시골 아이들에게도 특별한 느낌을 주었나 봅니다. 텔레비전도 없는 집이 많았는데 어디서 배웠을까 우리는 삼삼오오 각자의 마을길로 흩어져 돌아가는 하교 길 내내 목청껏 캐롤을 부르곤 했습니다. 교회 다니는 애들은 ‘기쁘다 구주 오셨네’ 같은 찬송집에 있는 노래를 불렀는데, 내가 수원 사는 사촌 동생에게 배워 온 ‘루돌프사슴코’를 흥얼거렸더니 반 친구들이 가사를 알고 싶어 해서 담임선생님 허락 하에 칠판에 써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조용히 들려오던 시골 교회 종소리, 성탄절 예배에 
초대 받아서 본 성극과 금색, 은색, 빨강, 초록 반짝이로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와 그 위에서 깜빡이던 꼬마전구와 풀어보면 주로 공책, 연필, 지우개와 같은 학용품이 담긴 작은 선물 꾸러미들. 무엇보다 산타가 그려진 카드에 마음이 설레었던 시절입니다. 

80년대 초, 이사 나간 읍내 문구사에서 침침한 불빛 
아래 나란히 걸려 있던 예쁜 카드를 고르며 나를 귀여워해 주셨던 선생님들과 보고 싶은 친구들을 떠올리고, 밤늦도록 책상 앞에서 무슨 말을 쓸까 애쓰던 그 마음이 그리워집니다. 몇 밤 자고 나면 새해를 맞아 또 연하장을 써야 해서 쓸 말이 늘 빈곤했지만, 좋은 말을 찾아 손으로 적는 일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우며 받는 이에게는 기쁜 선물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Ⅱ. 감상해 본다
어린 시절에 크리스마스카드는 이국적이고 다채로워서 마음에 끌렸지만, 연하장 그림은 싱겁고 매양 비슷한 그림이라 아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 그림과 한자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으니 재미도 못 느끼고 의미를 새길 수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아이의 눈에도 보기만 하면 웃음이 나는 그림이 있었으니 연하장에 담긴 조선 후기 풍속화들이 그랬습니다. 오래 들여다보면 볼수록 구석구석 숨어 있는 웃음거리들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는 당대 삶의 터전과 저잣거리의 일상에서 늘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이었을 겁니다. 완전 공감되는 그렇고 그런 우리들의 풍경인 것입니다. 

단원 김홍도(1745-1806?)의 그림은 단연 으뜸이었
습니다. 그런 그가 이렇게 고운 신사임당 풍의 그림도 그렸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김홍도는 영조 시대에 태어나 경기도 안산 강세황의 집을 오가며 7-8세 때부터 그림을 배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스승의 추천으로 도화서 화원이 되어, 29세의 이른 나이에 영조의 어진과 왕세자(정조)의 초상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는 그림뿐 아니라 음악에도 재능이 다분했고 뛰어난 서예가이자 시인이었습니다. 엄격한 궁중 기록화에서 해학미 넘치는 세속화까지 폭넓은 분야를 다룬 단원의 그림에서 세상을 보는 넓고 깊고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실력을 알 수 있습니다. 

황묘농접(黃猫弄蝶 노란 고양이, 나비를 놀리다)은 
단원이 생일 선물로 그린 화첩입니다.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림 속에 답이 있습니다. 연푸른 대지 위에 맑은 햇빛이 쏟아지고 이끼 낀 바위 곁에 알록달록 고운 패랭이꽃. 여기 날아드는 나비를 호기심 가득 노리고 있는 어린 고양이. 풀어보자면 이렇습니다. 한자의 중국어 발음에 근거하여 고양이(묘)는 70(칠십 노인 모)을, 나비(접)는 80(팔십 노인 질)을 의미합니다. 장수를 상징하는 바위 위에는 이끼까지 얹혀 있습니다. ‘청춘’이라는 꽃말을 가진 패랭이꽃(石竹花 석죽화)에는 축(祝)과 발음이 같은 죽이 들어 있어 축하를 뜻합니다.

등을 긁는 도구인 
여의(如意)의 굽은 모양과 줄기 끝부분이 닮은 제비꽃(여의초)에는 손닿지 않는 곳까지 여의로 시원하게 긁듯이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라는 기원이 담겨 있습니다. 생신을 맞은 주인이 칠십이 되고 팔십이 되도록 곱게 오래오래 사시고 모든 일 뜻대로 이루시기를 바라는 덕담이 정성껏 담긴 선물인 것입니다.

Ⅲ. 읽어 본다
손 글씨로 덕담을 나누는 일이 점점 멀어지는 시대에 살지만, 새해에는 온라인상에서라도 단체문자 대량생산하지 말고 온기 넘치는 덕담 한마디 먼저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요. 김홍도를 정조의 화가라 부를 만큼 그에 대한 정조 임금의 사랑과 신뢰는 컸고 의문의 죽음으로 정조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그 또한 어려운 말년을 보냈을 거라 추정됩니다. 단원의 임금이자 조선 최고 부흥기를 선도한 정조대왕의 말과 글을 모은 안대회 님의 『정조치세어록』에서 새해 첫날 윤음을 내리는 정조의 마음을 읽어 봅니다.

새해 첫날에 농사를 장려하는 윤음(綸音 임금이 신하나 
백성에게 내리는 말)을 몇 번이나 내렸다. 내가 왕위에 오른 뒤로 빠뜨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농사가 해마다 잘되지 않아 재작년에는 기근이 들고 작년에는 더 심한 기근이 들었다. 어찌 날씨가 가져온 재앙 탓만 하랴? 대개 밭 갈고 김매는 시기를 놓친 적이 많았고 물을 대어 효과를 충분히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윤음을 내리는 것이 형식만 갖추는 데 불과하지 않은가? 형식만 갖추는 것임을 알면서도 하는 것은 아예 하지 않음만 못하다. 그래서 올해에는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
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정성을 바쳐도 보답 받지 못하거나 감동할 일을 했어도 응하지 않는 인간사란 없다. 그러므로 지방의 수령이 내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것은 내 자신이 반성할 점이다. 나는 내 정성을 다할 뿐이다. 더구나 올해는 지난해와는 다르지 않은가?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또 이렇게 불러 쓰노니 관찰사와 수령은 명심하기 바란다.


정호경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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