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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당신 것으로 풍요합니다.(시편 104:24)
하늘에 별과 달이 있다면, 땅에는 풀과 꽃이 있습니다. 몽골의 초원에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이 말의 뜻을 온몸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계절이 봄과 여름을 지낸 가을이라면 금상첨화. 세상 초원의 원형이 돌아 나가는 길목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즈음 그곳을 다녀온 내 친구는 “목 놓아 울기 좋은 곳(好哭場)”이라는 연암의 열하일기를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꽃은 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혹독한 겨울나라 몽골의 꽃은 애절합니다. 오월에야 강이 녹기 시작하고 유월이 되어야 땅이 풀립니다. 그리고 모든 생명들이 아주 바빠집니다. 그렇게 봄과 여름을 지내고 조금 여유가 생기기 시작할 그 때, 이미 말라버린 여름 꽃과 뒤늦게 피어나는 가을꽃이 만났습니다. 늦은 나이에 무슨 꽃 타령! 그래도 좋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몽골에 와서 살면서 내게 꽃은 나이와 상관이 없어졌습니다. 더구나 곧 겨울을 만날 늦은 꽃들이기 때문입니다.
꽃은 하늘의 구름처럼 우리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이고 장치임에 틀림없습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남과 북으로 산들이 둘러쳐 있기 때문 동서로 길게 뻗어나가고 있는 도시입니다. 북쪽 산은 시베리아까지 연결되는 산맥의 자락인 칭킬테산이고 톨강 건너 남쪽의 복두한산은 수 년 전까지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성산(聖山)입니다. 아주 추운 겨울 몇 달은 어쩔 수 없지만, 나머지 어떤 날도 날마다 울란바토르 시민의 사랑을 받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산임에 틀림없습니다. 길을 벗어나 산에 오르는 길목에 들어서면 유모차나 강보에 싸인 아가부터 온 가족이 자리를 펴고 눕거나 앉아 편안히 쉬고 있습니다. 흥이 겨운 젊은이들은 초원 위에서 자기들끼리 괜히 씨름판을 벌립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어른들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 바로 곁에 소나 낙타들이 어슬렁거리고, 여기저기 누워 풀을 뜯는 광경은 낯설도록 한가합니다.
아무데서나 그냥 언덕을 오르면 모두 발밑에 깔리는 풀밭입니다. 땅바닥에서 흙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득한 허브의 감촉과 향기가 황홀합니다. 어느 나라에서건 귀하게 취급받는 에델바이스 또한 이미 고도가 높은 울란바토르의 낮은 구릉 여기저기 피어 있습니다. 다람쥐와 새, 그리고 나비와 벌들도 바쁘게 평화롭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면 푸른 하늘에 구름이 장관입니다. 하늘을 크게 많이 볼 수 있는 몽골에 살면서도 미처보지 못했던 몽골의 또 다른 모습, 바로 땅입니다. 하늘과 맞먹는 또 다른 몽골의 얼굴입니다. 하늘과 땅이 이렇게 사람들을 가운데 끼고 모이고 흩어집니다.
비가 한차례 더 후드득 지나갑니다. 딛고 오르는 땅의 감촉이 한결 더 부드러워졌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최상급 카펫입니다. 초원을 지나 산에 오를수록 갈잎나무와 자작나무가 숲에 둘러싸인 풀밭에 앉으니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 떠오릅니다. 그가 나오는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고 싶습니다. 손에 만져지는 풀과 꽃을 구분하며 색과 선의 세련됨에 새삼스럽습니다.
하늘의 별들은 별대로, 구름은 구름대로, 땅의 풀들은 풀대로 사랑받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하나님의 코드가 보입니다. 무슨 의미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더구나 무슨 얘기나 사연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아름다움이며 사랑입니다. 색은 색대로, 선은 선대로, 감촉은 감촉대로 그 자체가 의미이며 감동입니다. 풀도 구름처럼 추상입니다. 곳곳에 장치해 놓은 창조주의 선한 뜻이 읽혀집니다. 감춰진 보물 또 한 덩어리-온통 주님! 당신의 것으로 풍요합니다.
함철훈 교수 (몽골국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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