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眞理의 자리 인간人間의 자리 150편의 시편은 5묶음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1권은 41편까지, 2권은 72편까지, 3권은 89편까지, 4권은 106편까지, 5권은 150편까지입니다. 이렇게 5권으로 배열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모세오경이 가지는 권위를 염두에 두고 다섯 권의 체계를 잡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말씀에 주어지는 권위만큼 우리 일상도 존중받아야 함을 보여준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시편은 오랜 시간 여러 작가에 의해 쓰인 문서일 뿐아니라, 오랜 시간 교회 공동체가 함께 노래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이 시편을 읽고 묵상하는 우리들도 이런 고백 공동체에 속합니다. 역사란 언뜻 멀어 보이지만 이미 우리 발을 적시고 있는 물줄기인 것입니다. 2017년 9월과 10월은 시편의 4권으로 출발합니다. 5권으로 진입해서 10월을 마치게 되는데 이어지는 11월과 12월 두 달 동안 계속 5권의 마지막 장까지 이어가게 됩니다.
시편의 4권은 모세오경과 비교해 본다면 민수기에 해당하는 책이 됩니다. 민수기가 광야방랑의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고 볼 때 시편의 4권을 그런 맥락에서 읽어보는 것이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5권은 신명기에 해당합니다. 새로운 세대를 위해 반복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가 달라져도 바뀔 수 없는 진리의 고상함과 그것을 기억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의미를 분명히 해줍니다. 새로운 시대를 걸어가는 새로운 교회의 일원으로 5권의 시편들을 읽어나가면 좋겠습니다.
어떤 시편에는 표제어가 붙어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시편을 함께 읽을 때 이 표제를 무시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표제어는 시편 이해의 맥락을 지정해주는 중요한 표지입니다. 그래서 표제어까지 포함해서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그 시가 실제 언제 지어졌고 누가 지었는지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일지라도 최종 본문인 시편에 실린 표제어를 통해 우리는 그 시를 의미 있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표제어까지 정경에 속해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 두면 좋겠습니다.
시편의 배열은 형태적으로는 통시적(通時的)일 수 있지만, 사실 매우 공시적(公時的)인 내용을 갖습니다. 어떤 역사적 지점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너머 그 현장을 살아냈던 믿음의 선배들의 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진리가 우리의 삶속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다시 말해 그 진리와 사람은 어떻게 소통해 오고 있었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놀랍고 감사한 창(窓)인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달라졌지만 역사를 살고 있는 그들과 우리의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생각해 보면 시편 읽기가 더욱 의미심장해집니다.
우리들 발끝을 적시는 시편이라는 파도는 결국 진리라는 큰 바다의 실체입니다. 시편을 읽으며 우리는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이 무중력 상태의 허공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하찮아 보이는 인간군상(人間群像)들의 삶의 자리 한복판에서 발견되고 있음을 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는 바로 그 자리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