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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풍경
Ⅰ. 생각해 본다
이번 여름은 가뭄도 심했지만 장마도 그 이름대로 길고 위력적입니다. 땅이 흡수할 시간도 주지 않고 쏟아지는 물 앞에서 무력한 모습으로 남게 되는 건 여전히 사람들입니다. 수재민이라 불리는 많은 사람들 중 또 많은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물을 관리하고 재난 대비책을 제도적으로 정비하는 일은 언제나 허점이 있어 보입니다. 그래도 뉴스를 읽으면서 힘을 얻는 내용은 시민들이 서로를 생각하여 돕는 모습입니다. 지친 사람들 곁에 놓인 물병과 라면을 비롯한 생필품들. 몇 년이 흐른 뒤지만 지난 수해 때 신세를 졌던 지역으로 복구를 돕기 위해 모여드는 정 많고 의리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랑의 불씨들을 품고 일상을 살아가기에 공동체가 위태로울 때 연대할 수 있고, 안전과 힘을 스스로 구축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는 태풍이라는 복병이 남아 있지만 의연하게 맞이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순탄한 길이 행복한 만큼 우여곡절이 많은 길은 이야기거리가 풍성합니다.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는 것인지, 돌아보면 성숙해진 내면과 관계의 결실로 미소 짓게 될 것입니다.
Ⅱ. 감상해 본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공동체의 모습만큼 마음을 가득 채우는 풍경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작게 나누고 나눈다면 너와 내가 손잡고 걷는 풍경이 되겠습니다. 자신의 그림과 함께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줄 모드 루이스(Maud Lewis 1903-1970 캐나다 노바스코샤주)를 소개합니다.
날 때부터 장애가 있던 모드는 자신을 놀리는 친구들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지내게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앓은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다리를 절어 걷기가 어려웠던 모드는 집 안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보았습니다. 손이 오그라들기 전까지 엄마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민속 공예와 그림,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엄마와 크리스마스 카드를 그리며 예술적 재능과 흥미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사랑으로 돌봐주시던 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시는 슬픔을 겪은 후 모드는 숙모와 함께 살게 됩니다.
몸은 불편해도 밝고 강한 내면을 가진 씩씩한 아가씨로 성장한 모드는 드디어 독립을 감행합니다. 가난한 생선장수 에버렛이 가정부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그를 찾아 갑니다. 고아원에서 자란 후 독립한 에버렛은 거칠고 엄격하지만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둘은 결혼하게 되고 에버렛은 모드의 든든한 후원자로 곁을 지켜 줍니다. 그림 그리는 일이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식임을 모드가 알았듯이 에버렛은 모드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모드의 그림에 매력을 느낀 이웃들과 관광객들이 그림을 사기 시작하고 세계적인 유명세도 뒤따릅니다. 모드는 민속화가이면서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예술세계를 펼쳤기에 나이브 화가(Naive Artist)로도 불립니다. 물감을 섞지 않고 튜브에서 바로 짜서 그린 모드의 그림은 그가 사랑한 주변 풍경들을 생생하고 즐겁게 전달해 줍니다.
Ⅲ. 읽어 본다
최근에 개봉된 ‘Maudie(우리말 제목: 내 사랑)’ 라는 영화에서 모드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 영화라기보다는 모드의 전기 영화가 분명하기에 우리말 제목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슬프게도 에버렛은 모드가 죽은 지 9년 후에 그림 강도에게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작고 소박한 집은 모드와 에버렛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노바스코샤 미술관에 복원되어 있습니다.
모드와 에버렛의 이야기를 읽으며 왜 ‘즐거운 편지’가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남편을 두고 9년이나 먼저 떠난 아내와 아내를 먼저 보내고 그 세월을 홀로 지낸 남편은 서로를 기다렸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다림의 자세’에 대해 시인처럼 생각해 보는 중입니다.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정호경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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