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담은 작가 여행 중 곁에 있던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다면, 그것도 처음 본 사람과의 여행에서 말이죠.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만약 이런 일이 생긴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앉아있는 남자의 흉상 (로타르 III), 1965-1966 ⓒ Alberto
2017년 12월 21일(목)부터 2018년 4월 15일(주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 展이 열립니다. 코바나 콘텐츠와 파리의 자코메티 재단과의 협업으로 한국에서 처음 개최한 전시입니다. 스위스 출신의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는 20세기 최고의 예술가이자 조각가로 “예술가 중의 예술가”라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스위스에서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와 함께 화폐에 얼굴이 새겨져 있을 정도로 나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초기 시절부터 말기까지 조각, 회화, 판화, 드로잉, 사진, 유품 등 총 120여 점을 선보입니다. 어릴 적 자코메티는 예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죠. 입학한 중학교에서 재능을 알아보고 창고를 개조해 그를 위한 개인 작업실을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 그린 인물 회화작품을 보면 왜 그의 재능이 대단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코메티는 20대 초반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노인과 여행을 하게 됩니다. 즐거움도 잠시, 첫 여행지에서 노인은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다음날 사망하게 됩니다. 홀로 죽어가는 노인을 지켜본 그는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이 자신의 코앞에 닥쳐올 수 있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 기억 때문에 어둠을 두려워하게 됐으며, 잠을 잘 때도 불을 켜놓았다고 합니다. 자신이 목격한 죽음과 1차, 2차 세계대전으로 받았던 충격과 상처를 자코메티는 조각 안에 담기 시작합니다. 다른 예술가들의 조각 작품들은 덩어리를 붙여나가는 방식이라면, 자코메티는 덩어리를 걷어내는 과정 속에서 그 안에 담겨 있는 상처받은 내면, 영혼 자체를 보고자 했습니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마치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처럼 빼빼 말랐으며 이목구비 형태가 불분명하고 나무껍질처럼 거칩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아시아 최초로 ‘로타르 흉상’과 ‘걸어가는 사람’ 원본을 모두 공개했습니다. ‘앉아있는 남자의 흉상(로타르III)’은 석고 원본과 청동으로 캐스팅 한 작품이 마주보고 있습니다. 그가 1960년 심장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까지 만들었던 작품입니다. 끝내 다시 돌아와 만들지 못 했지만 자신의 삶의 고통과 아쉬움을 담아낸 역작으로 꼽힙니다. 마지막 공간에는 특별히 자코메티 재단에서 만든 ‘침묵과 묵상, 기도의 방’이 있습니다. 검은 커튼을 열고 들어가면 188cm 높이의 ‘걸어가는 사람’ 원본이 있습니다. 가느다란 팔다리,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으나, 앞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 작품은 불안과 고독 그리고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보여줍니다. 현재 3천 8백 억 원을 호가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유리벽이나 안전선 없이 놓여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프랑스 자코메티 재단에서는 이 작품을 온전하게 보여드리기 위해서 이런 모험과 같은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움켜쥐려는 인간의 욕심을 과감히 버리고, 덜어냈던 알베르토 자코메티. 고통과 아픔을 숨기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인간의 본질에 한발짝 더 다가선 예술가이자 철학자의 면모가 돋보이는 전시입니다. info 일시 | 2017년 12월 21일(목) - 2018년 4월 15일(주일) 장소 |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1층 티켓 | 성인 1만 6천 원, 청소년 1만 원, 어린이 8천 원 문의 | 02-532-4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