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한 달쯤 지났을까요. 소파 옆에 놓여 있던 공기청정기를 옮기다가, 잃어버린 대나무 귀이개를 바로 그 밑에서 발견했습니다. 아내도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마치 잃어버린 자식을 되찾은 사람처럼 이 귀이개를 반가워했습니다. 귀이개를 깔고 있던 이 공기청정기는 몇 년 전에 구입한 것입니다. 새집 공기를 정화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누군가의 말에 솔깃해서 상당히 비싼 금액을 주고 구입했습니다. 그게 정말 공기를 정화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그걸 사고 나서 두어 달 후부터는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공기청정기는 벌써 몇 년 동안이나 거실에 놓아두고 사용하지 않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애물단지가 괘씸하게도 지난 한 달 간 우리 부부의 사랑스런 귀이개를 깔고 있었습니다. 값비싸지만 가장 무용한 물건이, 값싸지만 가장 유용한 물건을 완전히 가리고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대비되는 두 물건이 만들어낸 이 사건을 통해,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 사회에서 어떤 사람일까. 그들이 나를 사용하고자 할 때 아무때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위치에 나를 늘 제공해 두고 있었던가. 나를 사용하면 마음마저 후련해지는 그런 사람이었던가. 내가 없어지면 그들이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그런 존재일까. 나를 다시 찾을 때,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낸 것처럼 그렇게 반가워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공기청정기처럼 나의 가치를 높이 매겨놓고, 나를 사용하기 쉽지 않게 만들어놓고 있지는 않았던가. 나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나의 효용 가치가 정말 있는지를 의심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잘 사용했지만, 그다음부터는 별로 사용할 일이 없는 그런 존재는 아니었을까.
정작 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다른 사람을 가리고 있지는 않았던가. 또,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떤 존재였던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하나님은 나 때문에 자주 기뻐하셨을까. 모습은 그럴듯하지만, 즐거움은 전혀 드리지 못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던가. 하나님이 나를 애써 만드셨는데도 나는 별 쓸모도 없이 세월만 보내면서 살아오지는않았던가. 이제부터라도 값싼 대나무 귀이개처럼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웃과 하나님께 매일 즐거움과 후련함을 나누어 주는 사람말입니다.
최형구 목사 (보리떡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