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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태어나 별이 되는 사람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계속해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끝내 하지 못했던 말들,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들 그리고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연극 <꽃, 별이 지나>는 이렇게 사람 안에 오래 남아 있는 기억들을 천천히 꺼내어 보는 작품입니다. 슬픔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을 담담히 바라보게 합니다.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꽃, 별이 지나>가 2년 만에 다시 대학로 무대로 돌아옵니다. 초연당시 사건 속에서의 좌충우돌하는 감정의 진폭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지는 감정의 축적을 조용히 그려내 많은 여운을 남긴 작품입니다. 이번 시즌 역시 그 따뜻한 온도를 이어갑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제주도에서 작은 꽃집을 운영하는 미호가 있습니다. 미호는 오늘도 창문을 활짝 열고 건강한 하루를 시작하려 애씁니다. 우울 속에 머물고 있는 친구 희민의 생일을 위해 꽃을 만들기 시작한 그녀. 그러나 꽃 사이를 채우듯 오래된 기억들이 하나둘 다시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만화처럼 반짝였던 희민과 지원의 사랑 이야기, 그러나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상처. 오빠에게 떠넘겼던 치매 할머니의 돌봄. 끝내 죄책감으로 남아버린 엄마의 죽음까지. 미호의 회상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안개꽃이 꽃다발을 감싸듯 시공을 채웁니다.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는 거대한 장치나 무대의 화려함보다는 배우와 움직임 자체의 힘을 강조한 작품을 만들어 왔습니다.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을 만큼 간결하지만, 늘 새로운 형식과 양식을 실험하는 무대를 꾸민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극단입니다. 배우들의 몸이 공간이 되고, 숨소리와 움직임이 장면이 되는 무대를 만들어 설명보다 감각을 이끌어 냅니다. 대표작인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역시 배우들의 움직임과 아카펠라만으로 세계를 만들어냈고, <나와 할아버지>,
<뜨거운 여름>,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와 같은 작품들 또한 사람 자체의 에너지를 살려 공연만이 가진 힘을 관객들에게 전달해 왔습니다. 작가 겸 연출가인 민준호는 ‘간다의 작업은 친구들과 함께 만드는 놀이터에 가깝다’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실제로 모든 작업은 구성원들이 위계보다는 동등한 동료로서 함께 실험에 임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진선규, 이희준, 김지현 등 많은 배우들이 오랜 시간 ‘간다’의 무대로 돌아오는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안전한 길보다 새로운 시도를 택하고, 완성된 답보다 함께 부딪히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간다’만의 특별한 작업 방식입니다.
<꽃, 별이 지나> 역시 ‘간다’의 색채가 짙게 묻어납니다. 안무가 김설진은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을 움직임으로 확장시킵니다. 화려한 장치보다 배우들의 움직임과 호흡으로 채워지는 무대, 인물들의 시선과 침묵으로 서로를 향해 다가가거나 멈춰서는 몸짓이 장면을 만듭니다. 이를 통해 민준호 연출의 말처럼 ‘꽃 같은 사람들이 별이 되는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죽음을 다루지만, 결국 삶을 향해 다시 걸어가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시각적으로 잘 표현됩니다.
다양한 매체와 드라마에서 사랑받고 있는 명배우들이 함께 무대에 오릅니다. 박소진, 고보결, 진선규, 이희준, 양경원, 이다아야, 배소미, 차용학, 김대현, 홍지윤, 정예인 등 서로 다른 결을 가진 배우들이 작품 안에서 슬픔과 사랑, 죄책감과 위로를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꽃, 별이 지나>는 인물들의 슬픈 감정들을 억지로 정리하거나 쉽게 치유하려 하지 않고, 관객들이 담담하게 기억을 관통하게 합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면서도 결국 남겨진 사람들이 다시 서로를 붙잡아 가는 이야기로 완성됩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완전히 잊고 살아갈 수는 없지만, 그 기억을 안은 채 다시 살아갈 수는 있다고, 서로의 상처를 바라보는 일 역시 사랑의 한 형태일 수 있다고, 따뜻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한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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